필명 '용킴'…"개그 아닌 작품으로 인정받고파"
태국·베트남서 먼저 판권 팔려…"전세계 적시는 소설 됐으면"
"오죽하면 김용이 아닌 용킴이라는 필명으로 책을 냈을까요. 개그맨이 책을 내면 외국에선 작품에 주목하지만 한국에선 편견에 가득 찬 시선만 돌아오더라고요."
작가 용킴의 장편 소설 '루루'(정인)가 최근 출간됐다.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을 한 주인공이 자신의 딸과 만나는 과정을 추리적 서사로 풀어낸 소설은 파격적인 내용과 읽기 쉬운 문체로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책은 한국 출간 전 태국과 베트남에 판권이 팔려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보인 소설'로 화제를 모았다.
'루루'가 화제를 모은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작가인 용킴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작가 소개란에도 '한때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이라는 수식어만 쓰여 있어 용킴의 실체에 독자들의 궁금증이 쏠렸다.
놀랍게도 '루루'의 작가 용킴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개그맨 김용(50)이었다.
김용은 지난 14일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루루'의 작가라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그는 "책 쓰는데만 10년이 걸렸다"며 "'루루'는 제가 겪은 경험에다 딸을 둔 성전환자의 이야기를 가미한 실화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출간하는 소설이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을까.
김용은 "한국에서 개그맨 출신 작가로 떳떳하기 힘들었지만 작가로서 자부심을 느꼈다"며 "베트남, 태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진출하고 싶다. '루루'가 전 세계를 눈물로 적시는 소설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985년 KBS 공채 개그맨 출신인 그는 인기 프로그램 '유머1번지'의 '변방의 목소리', '네로 25시' 등에서 활약했던 '잘나가는' 개그맨이었다. 그는 개그맨 활동을 접은 후에도 요식업 사업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터 작가의 꿈을 키워왔을까.
김용은 "당시 코미디 프로그램은 작가가 없었다"며 "그래서 제가 스스로 대본을 쓰면서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이어 "해외를 돌아다니며 평생직장을 무엇으로 해야 할까 고민했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식스센스'를 뛰어넘는 작품들을 쓰고 싶다는 목표로 글쟁이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는 2000년대 초 한 블로그에 '죽을 때까지 한번도 못한 남자, 인간 한번만'을 본명으로 발표했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가 이 소설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영화배급사 UIP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패소였다.
"소송을 하며 너무 지쳤어요. 소송보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죠. 삼류 개그맨 주제에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이야기에 충격도 받았어요. '어떻게 같은 한국 사람끼리 그럴 수 있나'하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술자리에서 여장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남자에서 여자가 된 성전환자가 일본에서 딸을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정신이 확 들었다고 했다. 김용은 '내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라고 상상하며 자전적 이야기와 버무려 보자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소재로 비극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며 "민식, 수지, 상섭 등 캐릭터를 설정하는데만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김용은 전반적인 내용을 담은 초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를 접촉했지만 개그맨이라는 이유로 다 거절당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소재가 파격적이니 해외 독자를 대상으로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에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국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의 눈에 띄었다. 책은 이 대표의 활약 덕에 해외 에이전시들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해외 출간까지 이어졌다.
김용은 "한국에서는 책을 내려면 꼭 등단을 해야 하는데 저는 이것도 하나의 기득권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기 이전에 외국에서 먼저 책을 파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이 외국에서 팔리면 개그맨이 낸 소설이라고 꼬투리를 잡지 않을 것 같았다"라고 덧붙였다.
성전환자인 주인공이 아버지가 아닌 엄마가 돼 딸을 찾는 파격적인 내용은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환호를 받고 있다. 김용은 소설이 영화화에 적합한 작품이라며 이를 위한 시나리오도 준비하고 있다.
김용은 "소설을 쓰면서 영화장면까지 구상했다"며 "영화로 제작돼 한국에 역수입되는 꿈도 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김용이 아닌 용킴으로 작품을 내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문단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는 그에게 현재 한국 문학에 대한 견해를 마지막으로 물었다.
"제가 볼 때는 한국 작가들은 폐쇄적인 면이 강해요. 그래서 소재가 다양하지 못하죠. 너무 한국적인 소재만 다루면 해외에서는 잘 안 먹히니까 시야를 좀 넓혔으면 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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