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문 수탈·저항의 흔적… ‘근현대사 야외 박물관’

전북 군산의 추억속으로

9-1.jpg
전라북도 군산시 월명동에 위치한 일본식 숙박시설 ‘고우당’에서 관광객들이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고우당’은 ‘곱다’의 전라도 사투리인 ‘고우당께’를 표현한 이름으로 고우당 게스트 하우스는 이국적인 숙박 체험과 함께 과거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아픔을 되새기고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북 군산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도시 전체를 ‘근현대사 야외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특히 가족과 함께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어려움이 없는 곳으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5월에 가족 여행을 계획해도 좋을듯싶다.

■ 군산 근대사를 한눈에

군산 근대사 여행은 근대문화유산거리가 조성된 해마로 일대에서 시작한다. 

예전에 이곳의 지명은 장미동이었다. 장미(藏米)는 ‘쌀을 저장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일제는 군산항을 호남 지역에서 수탈한 곡물을 본국으로 실어 가기 위한 거점으로 삼았는데, 장미동이라는 지명이 일제가 우리 쌀을 수탈했다는 증거다.

 

어수선하던 해마로 일대가 예쁜 거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11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이 개관하면서부터다. 이름 그대로 군산의 근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하는 이곳은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체험관,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1930년대 시간 여행’을 주제로 1930년대 군산에 있던 건물을 복원한 근대생활관이 인기다. 군산역, 영명학교, 야마구치 술도매상, 형제고무신방, 홍풍행 잡화점 등 당시 군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제일은행 군산출장소 출근부, 창씨개명 호적원부, 토지 목록, 지적도 원본 등 귀한 자료도 살펴볼 수 있다. 박물관 1층에 자리한 등대도 눈길을 끈다. 어청도등대를 3분의2 크기로 축소한 모형이다. 어청도등대는 1912년 3월 1일에 점등해서 오늘까지 고군산군도 앞바다를 비추고 있다.

 

9-2.jpg
경암동 철길마을
■ 주변 건물들도 새 단장

근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면서 주변에 방치된 건물들도 새롭게 단장했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바뀌었다. 1922년 건립된 이 건물은 식민지 경제 수탈을 위한 금융기관이었다. 해방 뒤 한국은행·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됐으며, 한때 유흥주점 간판이 달린 적도 있다.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근대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일본 제18은행은 나가사키(長崎)에 본점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부업을 하며 인천과 군산 등에 지점을 차려 성업했다고 한다. 일제의 조선 곡물 수탈을 상징하는 장미동 곡물 창고도 지금은 장미갤러리로 바뀌어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군산 근대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구 군산세관 본관이다. 벽돌 건물에 동판으로 얹은 지붕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1908년 대한제국이 벨기에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해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울에 있는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힌다.

 

근대의 흔적은 빵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중앙로에 자리한 이성당은 1920년대 일본인이 운영하던 화과자점 ‘이즈모야’에서 출발했다. 

9-3.jpg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됐던 초원사진관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인이 가게를 인수하면서 이성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지금까지 영업한다. 지방 소도시에 있다고 해서 작고 한적한 빵집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오전 10시 무렵에도 빵을 사러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성당의 최고 인기 메뉴는 앙금빵과 야채빵이다. 이성당에서 10여 분 걸어가면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다.

군산에서 큰 포목점을 하며 돈을 번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목조건물이다. 다다미방과 편복도, 일본식 벽장(오시이레), 손님을 맞는 도코노마 등 대규모 일식 가옥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야쿠자 두목 하야시의 집, 영화 ‘타짜’에서 극중 평경장(백윤식)이 고니(조승우)에게 ‘기술’을 가르치던 집이 바로 이곳이다.

 

■ 군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 곳들

군산은 이런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됐다. 대표작이 멜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다.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가 주연한 작품으로 대부분 군산에서 촬영했는데, 월명공원으로 가는 언덕에 초원사진관이 영화에 나온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9-4.jpg
맛있는 빵을 살 수 있는 이성당
경암동 철길마을은 오직 군산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을 지닌 곳이다. 낡은 판잣집이 양쪽으로 늘어선 가운데 철길이 놓였다. 이곳에 처음 철길이 놓인 때는 1944년 4월4일. 군산시 조촌동에 있는 신문 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의 생산품과 원료를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었다. 2008년 7월1일부터 운행을 멈춰, 기차가 다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군산 여행의 종점은 커피다. 은파호수공원 앞에 자리한 카페 리즈는 콜롬비아 유기농 인증을 받은 커피를 비롯해 공정 무역, 레인포레스트 등 다양한 인증을 받은 커피와 스페셜 티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카페 한쪽에는 로스팅 기계가 여러 대 있는데, 마음에 드는 원두를 선택해서 직접 볶아보는 것도 이색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전문 바리스타가 도와주니 초보자도 쉽게 해볼 수 있다.

 

 조성필기자

자료ㆍ사진=한국관광공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