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당당하지 못한 정치권의 모습이다. 이번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만든 민심은 청년들의 분노와 장년층과 노인들의 불안이다. 정치권이 이들의 분노와 불안을 잊지는 않았겠지만 지금 여기에 고민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분노와 불안은 희망을 볼 수 없을 때 표출된다. 희망을 잃으면 절망하게 되고, 절망이 깊어지면 공동체가 무너지게 되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특히 청년이 희망을 상실하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다.
열심히 살면 나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청년들의 소박한 희망이 바로 그 사회를 움직이는 역동성이기 때문이다. 괜찮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결혼하고, 작지만 내 집에서 자녀를 낳아 키우고, 열심히 저축하면서 단란하게 사는 것이 청년들의 소박한 희망이다.
금수저가 아닌 한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신분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판 노예제도인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평생 알바로 살아야 할 운명인 청년들도 많다. 대다수 대학생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안고 졸업한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의 갑질에도 청년들이 내몰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 대다수 청년들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청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정부의 모든 정책 평가기준은 청년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정책도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간다면 절대로 좋은 정책이 될 수 없다. 청년들에게 사전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야 희망을 주게 된다.
여기에 역행하는 정책은 범죄가 아닐 수는 있어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이다. 왜냐하면 공동체의 존립에 필수적인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신뢰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와 경제 활성화로 포장한 노동개혁은 정규직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비정규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전적 기회 균등에 반하는 정책이다.
모든 정책이 공정하고 투명하고 정직해야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게 된다. 부자들과 재벌 대기업들에게 혜택을 준 감세 정책은 공정하지도 못했고 정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부를 집중시키고 대물림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세금이 줄어들어 투자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고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세수가 줄어 정부의 재정적자만 늘어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는 대표적인 정책은 ‘빚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부동산 정책이다. 청년들이 월급을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해서 경제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전세와 월세의 상승으로 고통 받고 희망을 상실하는 청년 숫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우리 사회 온갖 모순의 온상이다. 자영업자 청년들도 임차료 부담에 내몰려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는 있으나 마나 하는 수준이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해고당한 청년은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겨우 3개월의 고용보험으로 견뎌야 하고, 이 기간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니 절망할 수밖에 없다. 고용보험 수급기간을 대폭 늘리고 충분한 재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청년들이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공동체 전체가 붕괴되는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물론 재정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 몰락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다. 청년들이 희망을 잃었는데 우리 사회 최대의 화두인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 리 없다. 정부와 국회가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간 정책들을 조속히 개폐하고,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책들을 개발하지 않으면 나라의 역동성을 살려낼 수 없다.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차기 대권을 창출하는 당당한 길이다. 부질없는 대선 셈법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대기업과 부자들도 상생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전통적인 공동체 정신에 충실할 때다. 문제는 청년이다.
허성관 前 행정자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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