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의결된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 대상을 확대하는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결을 요구하면서 여소여대로 변한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풍랑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 중인 박 대통령은 19대 국회 임기의 사실상 마지막 날인 지난 27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결을 요구했다. 이번 거부권 발동은 현 정부 들어 11개월 만에 두 번째다. 지난해 6월에도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당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결국 사퇴하는 등 정국이 요동쳤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법이 더는 논란이 안 되기를 바란다. 정쟁보다 협치를 통해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재의 요구에 대해 “대통령의 고유 권한 행사”라며 옹호했다. 하지만 야권은 박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비판에 나서는 등 지난 13일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간 회동을 통해 어렵사리 마련된 ‘협치 분위기’가 위협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 민경욱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재의 요구는 당연하고 고유한 권한 행사”라며 “재의 요구는 협치와 성격이 다른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매우 졸렬하고 유치하다. 국민은 ‘총선에서 심판받고도 정신 못 차렸구나’라고 지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일방적 독주가 아니라 진정 협력하는 협치로 난국과 난제를 풀어가길 기대한다. 그것이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이며 다수 국민의 뜻”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일부에서 19대 국회에서 재의결 요구가 이뤄진 법안인 만큼 재의결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 폐기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국회사무처는 20대 국회에서 의장과 여야가 합의되면 재의결 요건이 충족된다는 해석을 내놓은 상황이다. 이에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권 3당은 박 대통령의 재의 요구안을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하기로 합의하면서 반격 준비에 나섰다.
야권 정당들이 국회법과 ‘민생 협치’는 분리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긴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일단 ‘대치 전선’이 형성된 만큼 여야 간 간극이 복원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협치 무드 속에 탄생한 여·야·정 민생경제점검회의를 비롯한 각종 여야 협의체도 삐걱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 재의 요구 여파가 당장 여야의 원구성 협의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원구성 협상 과정에서 청와대를 소관하는 운영위원회를 어떤 정당이 맡게 될 지를 비롯해 여야 간의 대립구도가 짜여지면서 원구성 협상에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김재민ㆍ정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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