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未生’들의 고함소리

최근 KBS TV에서 정글에 사는 한 부족의 모습을 방영했다.

 

특별히 관심을 끈 것은 호랑이가 많은 밀림에서 꿀을 따고, 암벽을 타고 올라가 바다 제비집을 채집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곡예처럼 위험하고 험난한 것. 90뉅가 넘는 암벽을 밧줄 하나에 오르다 떨어져 죽는 일도 많고, 호랑이 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한데 그렇게 목숨을 걸고 번 돈은 우리 돈으로 7만 5천원.

 

더욱 보는 이를 짠하게 하는 것은 밀림을 걸으면서 일행들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오지 마라’는 경고의 표시이며 ‘여기 우리는 여럿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호랑이는 덤벼들어 사람들을 물어가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 많은 부족의 리더는 정글 바닥의 호랑이 발자국을 빨리 식별하여 인근에 호랑이가 있다고 느끼면 즉시 돌아온 길로 빠져나간다. 그때까지는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닌 ‘미생’이다.

 

강남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죄 없는 여성이 한 정신질환자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 살해 현장과 강남역 구내에 죽은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도배를 할 정도로 수없이 이어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세요.’ 또 어떤 것은 우리의 허술한 사회안전 시스템을 비난하는 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5월 31일에는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수리작업을 하던 19세의 김모군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물론 이 가련한 젊은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포스트잇이 금세 스크린도어를 다 채웠다. 그가 마지막 들고 있던 손가방에서 컵라면 한 봉지가 나와 더욱 충격을 주었다. 그는 이 라면 하나로 식사를 때우려 했는데 그것마저 못 먹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런데다 서울 메트로의 갑질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가 계속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 분노가 확산되었고 포스트잇 역시 더욱 뜨거워졌다. ‘금수저로 태어나세요.’ ‘컵라면, 너무 속상하다.’ ‘이 불안한 사회, 어른들 진짜 무관심해요.’ ‘19살에 죽었잖아. 어린 나이에, 100여만원 벌려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전에도 이런 사건이 발생했지만 포스트잇으로 자기 마음을 나타내는 것은 강남역 화장실 여성피살 사건이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작업중 숨진 김군 때처럼 뜨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에 외국에서처럼 추모 꽃을 바치는 경우는 볼 수 있었지만 이렇듯 포스트잇 행렬은 없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포스트잇에 분노를 담게 했을까?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같은 상황의 불안을 겪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에 근무하면서 역시 ‘컵라면’에 끼니를 걸어야 하는 또래의 젊은이들, 취업을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 혹은 그런 딸이나 아들을 둔 부모들….

 

말하자면 ‘미생’의 분노다. ‘미생’은 TV 드라마로 크게 히트했던 직장인들의 삶을 주제로 만든 작품의 제목이지만 원래 바둑에서는 집을 차지하고 있어도 산 것이 아닌 불안한 ‘삶’을 말한다. 그 드라마 ‘미생’에서 가장 감동을 준 명대사는 바로 ‘우리는 다 미생이다.’

 

그런데 이 미생들이 고함을 지르고 있다. 밀림지대에서 벌꿀을 따며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호랑이에 대한 불안함으로 고함을 지르듯, 포스트잇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이것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미생’의 고함소리를 들어야 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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