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wiz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지난 2일 부산 사직구장. 0대0으로 맞선 2회초 선두타자로 박경수(32)가 타석에 들었다. 롯데 포수 강민호(31)가 “이야, 경수형이 4번까지 올라왔네”라며 농담을 건넸다. 박경수는 “조용히 해.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야”라며 강민호를 나무랐다.
박경수는 이날 경기에 4번타자·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2003년 프로 데뷔 후 4번타자는 처음이었다. 그는 LG 시절에 주로 하위 타순을, kt에서는 5번과 6번을 오갔다. 그러나 개막 후 4번타자를 맡아온 유한준과 김상현이 차례로 부상으로 쓰러졌다. 조범현 kt 감독은 고민 끝에 박경수를 4번으로 낙점했다.
온갖 부담감이 박경수를 짓눌렀다. 박경수는 “전광판에 4번타자로 내 이름이 뜨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며 “타석에 들어서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여유를 잃은 방망이가 온전히 돌아갈 리 없었다. 박경수는 이날 4타수 1안타에 그쳤다. 이후 박경수는 줄곧 4번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안타를 1개라도 때리면 다행이었다. 무안타 경기도 있었다. 당장이라도 유한준과 김상현이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박경수는 5일 수원 LG전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전환점을 마련했다. 5대0으로 앞선 2회말 1사 1, 3루에서 LG 정현욱의 137㎞ 투심을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기는 쓰리런 대포를 쐈다. 4번타자로 나선 뒤 처음으로 기록한 홈런이자, 타점이었다. 부담감을 떨칠 수 있었다. 팀도 10대2로 이기고 연패에서 벗어났다.
박경수는 8일 수원 두산전에서도 4번타자 간판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다. 1대0으로 앞선 3회말 2사 1, 3루에서 두산 선발 유희관의 119㎞ 체인지업을 두들겨 중월 홈런으로 연결했다.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는 한 방이었다. 박경수는 4대2로 쫓기던 5회말 1사 2, 3루에서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추가했다. kt는 홀로 4타점을 쓸어담은 박경수의 활약에 힘입어 두산을 5대4로 꺾었다.
박경수는 “이제 4번타자라고 해도 특별한 느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생각하면서 ‘나만의 야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버린 억양이었다. 그리고 현재를 즐기고 있는듯한 표정이었다. 박경수는 “리그 최단신 4번타자지만 주장답게 열심히 하겠다”며 웃었다.
조성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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