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지도자? 칠레 광부에게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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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칠레에서 발생한 광산 매몰사건은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첫째 매몰기간이 69일로 최장기록을 세운 데다, 둘째 33명 매몰 광부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처음 갱도가 매몰됐을 때는 모두가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야말로 절망, 또 절망이었다. 하도급으로 파견 나온 광부 5명은 별도의 굴파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서로 주먹싸움을 벌이는 등 살벌하기만 했다.

 

이때 33명의 광부들 속에서 지도자가 나타났다.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 54세인 그는 ‘절망은 절망일 뿐’이라면서 한사람 한사람 대화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갇혀있는 광부는 33명이지만 이제부터는 1명이 더 늘어 34명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광부들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그 한사람 광부는 하느님’이라며 반드시 구출된다는 신념을 갖도록 했다.

 

캄캄한 절망을 희망의 빛으로 바꿔준 우르수아! 멋진 화술도 없고 특별한 지식이나 파워도 없는 한낱 광부에 불과했지만 그가 한 것은 이럴 때일수록 냉정하자, 싸우면 다 죽는다, 모두가 사는 길을 찾자-너무도 평범한 말이었지만 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모두들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한 사람당 하루에 통조림 참치 반스푼, 우유 반컵… 마침내 그들은 길고 긴 69일을 버티어 모두 구조될 수 있었다. 구출되는 순간에도 루이스 우르수아는 진솔했다. 동료 광부들을 질서 있게 하나씩 내보낸 다음 마지막으로 구조 상자에 올라탄 것이다. 그가 갱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대통령을 비롯 초조히 기다리던 모두는 열광했다. 루이스 우르수아는 순간 칠레의 국민적 영웅으로 탄생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세계 언론들은 이것을 ‘진실과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영웅’이라고 했다. 대중을 이끄는 참된 영웅은 진실과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

 

시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21세기는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면서 “심지어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에서조차 아버지란 이름만으로 존경받던 시대는 지났다. 아래로부터의 소통이 메시아의 환상을 깰 때 우리 사회는 폭력적 전근대성을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 언론 기고문에서 주장했다.

 

칠레 광부 우르수아가 보여준 것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소통’이 민주주의적 리더십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우리의 대표적인 진보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4월 새누리당 혁신모임의 초청 세미나에서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는 “민주적 규범을 경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는 황영철, 오신환, 하태경 의원 등 다수의 새누리당 혁신모임 멤버와 나경원, 이주영 의원 등 많은 의원들이 참석하여 당의 진로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역시 최교수가 지적한 ‘민주적 규범’이 핵심이었다. ‘아래로부터의 소통에 의한 민주주의’가 아닌 가부장(家父長)적 리더십으로는 대중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

 

그런데 뻔히 이것을 알면서도 새누리당은 참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분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 새누리당에 불이 났다고 더민주당, 국민의당이 좋아할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 모든 정당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같은 내분의 불덩이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 당을 이끌고 나라를 이끌겠다면 먼저 칠레의 광부 루이스 우르수아에게서 한 수 배우길 권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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