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돌보지 않아… 잊혀가는 현충시설

수풀에 가린 ‘과천 전쟁영웅’ 기념비
거미줄 쳐있는 3·1독립운동기념비
칠 벗겨져 흉물된 ‘광명청년 동상’
국가보훈처·지자체 무관심 속 방치

▲ 故김승철 중위의 순국정신을 기리는 기념비가 무성한 수풀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있다.

“버스정류장 뒤에 참전용사의 기념비가 있다고요? 전혀 몰랐습니다”

 

국가보훈처가 홈페이지 관리에 손을 놓으면서 스팸 광고 게시글이 수십일째 게재(본보 15일자 6면)돼 있는 가운데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시설 역시 관리부실로 인해 방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가 호국영령을 기리는 온·오프라인 모두 쓸쓸히 잊힌 채 버려져 있는 셈이다.

 

16일 국가보훈처와 도내 지자체 등에 따르면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과 국가수호의 국가유공자들의 공훈,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관련 건축물·조형물·사적지 등을 ‘현충시설’로 지정하고 있다. 현충시설로 지정되면 관할 지자체와 기관 등이 1차 관리자로, 국가보훈처는 총괄적인 관리·감독을 맡게 된다. 현재 도내에는 257개의 현충시설이 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가 별다른 지침 없이 지자체의 손에만 관리를 떠맡긴 채 적극적으로 관리에 나서지 않으면서 도내 현충시설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과천시 갈현동의 한 버스정류장. 정류장 뒤 언덕에는 무성한 수풀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뒤로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故김승철 중위의 순국정신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 광명시 하안동의 호국유공자 공적비가 부실한 관리로 곳곳이 녹슨 채 방치돼 있다.
그러나 무성한 수풀 탓에 바로 앞에서도 기념비는 보이지 않았고, 수풀 안으로 들어가서야 비로소 기념비와 태극기를 볼 수 있었다.

 

이에 기념비 앞은 버스정류장이 있어 수많은 시민이 오가고 있었음에도 상당수가 기념비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A씨는 “자주 이곳을 지나가지만, 나무들 뒤로 기념비가 있는 줄 몰랐다”고 “눈에 띄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6·25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유공자의 공적을 기억하고자 세워진 광명시 하안동의 호국유공자 공적비에서도 부실한 관리로 인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군복을 입은 광명 청년을 상징하는 전신 동상은 곳곳이 부식돼 칠이 벗겨진 상태였다. 특히 얼굴 부분은 모두 벗겨져 온통 검은색으로 변해 흉물스럽게 보였다.

 

오후 1시께 찾은 화성시 장안면에 위치한 3·1 독립운동 기념비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념비에 거미줄이 쳐 있는가 하면, 주변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어 마치 쓰레기들 옆으로 기념비가 덩그러니 세워진 것 같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에 대해 국가보훈처는 “규모가 작은 비석 등에 상시 관리 인원을 배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관할 지자체와 협조를 통해 주기적으로 현충시설의 상태를 점검하고, 현충시설 관리를 도맡는 시설지킴이를 충원해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김광호·송승윤·여승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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