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無泊)’은 군(軍)에서 흔히 쓰는 용어다. 하루 또는 그 이상을 수면 없이 강행하는 훈련이다. 무박 2일 행군만 하더라도 그렇다. 점차 판단력이 흩어지고 혼미한 정신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한 마디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극기다. 이런 특수한 극기 훈련이 일상생활에서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 직장이 있다. 그것도 본인과 타인의 생명을 책임지는 택시 운행이다.
지난 5월 30일 저녁 8시 의정부에서 버스와 택시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택시기사(48)가 중상을 입었다. 자녀 4명을 부양하며 어렵게 사는 가장이었다. 조사 결과 이 택시기사는 이른바 ‘풀타임 택시’를 몰고 있었다. 24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하는 근무 형태다. 사고 직전, 기사는 몸에 이상을 느꼈고 잠시 휴식을 취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결국 버스와 충돌했고 크게 다쳤다.
놀라운 건 이런 ‘풀타임 택시’가 의정부 등 일부 지역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택시 회사들의 돈벌이다. 12시간 근무하고 하루 쉬는 현재의 근무 방식으로는 이틀간 4명의 기사가 필요하다. 하지만, 24시간 근무하고 하루 쉬는 풀타임 택시를 운영하면 2명이면 된다. 기사 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인건비, 보험료 등 회사 이익이 모두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는 구조다.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립교통재활병원의 자료에 따르면 장시간 운전과 음주운전은 비슷한 위험성을 갖는다. 18시간 깨어 있는 상태와 혈중알코올 농도 0.05%(면허정지 기준)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정상인보다 2배가량 느려지고 시력과 청력이 감소한다고 한다. ‘풀타임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은 음주운전자가 모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 과정의 노동력 착취도 문제다. ‘풀타임 택시’가 한 달에 하는 운행 시간은 400시간 정도다. 하지만, 회사가 인정하는 1일 근로시간은 3시간뿐이다. 최저임금법에 의한 월급을 맞추기 위해 회사가 3시간밖에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택시 기사들은 불만을 얘기하지 못한다. 생계를 위해 운행해야 하는 개인 사정이 약점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노동력 착취다.
실태 조사가 급하다. 잠 안 자고 달리는 택시, 음주 운전 상태와 같은 택시가 얼마나 운행 중인지 그 실상을 조사해야 한다. 일반 승객이 이를 알아챌 방법은 없다. 관계기관이 택시 회사들을 상대로 조사해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풀타임 택시 운행을 즉각 중지시켜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는데, 이게 말이 되나. 그런 고용노동부라면 있을 필요도 없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