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방자치를 왜 시작하게 됐을까?
이미 다 만들어진 도시와 이제 막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는 필요한 정책이 다르니까, 주민 대다수가 농민인 도시와 반대로 대다수가 기업체 근로자인 도시는 그만큼 주민 복지의 방향이 달라져야 하니까, 우리 지역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더 잘 아니까…
그렇게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딱 맞는 옷을 골라 입을 수 있고, 딱 맞는 밥상을 차릴 수 있다는 희망으로 ‘지방자치’는 시작됐다.
우리 화성시에는 전국 최초로 시행한 사업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농업인 월급제이다. 사실 농업인 월급제에 사용되는 예산은 큰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벼 수매 전까지 여타의 소득이 없어 비싼 이자를 내고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던 농민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환영을 받는 정책이다.
올해 전국적으로 자유학기제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시험 대신 다양한 체험을 하며 꿈을 키우는 교육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는 이미 2012년부터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대신 인성과 창의성을 키우는 창의지성교육을 시작했다. 이제 우리 학부모들은 아이의 교육을 위해 타 지역으로 이사할 걱정을 하지 않는다. 아이가 행복한 교육, 다가오는 미래를 선도할 교육이 바로 우리 시에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그래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복지와 교육, 문화와 경제를 벗어나 딱 그 지역, 그 지역 주민에 맞춘 정책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5천만 명을 위한 정책을 펼칠 때 지방자치는 그 지방에 발을 딛고 사는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제 역할을 소화한다. 그래서 우리가 21년 전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지방자치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 초심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바로 지난 7월 4일 행자부는 우리 화성시를 비롯해 수원, 성남, 과천, 고양, 용인시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방재정 개편안’ 입법 예고를 단행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300만 시민들이 합의점을 찾아보고자 행자부에 반대성명을 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21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시민의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것이다.
전국 95%에 이르는 지자체가 재정자립도 50%를 밑돈다. 주민들에게 당장 시급한 현안과 공약사항 이행은 둘째 치고 지자체의 존속 자체도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 행자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은 세수 확충이 아니라 지자체 간 수평이동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가난한 아이들 중 그나마 좀 나은 아이의 주머니를 털어 생색을 내겠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스스로 성장할 힘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고 중앙정부의 자금 지원 없이는 지자체 운영조차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의 가치를 잊어버리고 일방적 세수 개편으로 전국의 지자체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중앙집권적 악수(惡手)를 뒀다. 더욱이 반발하는 지자체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지방세라는 작은 파이를 누가 더 많이 먹나 지자체 간 싸움까지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방자치가 제 역할을 다 하려면 자주재원 확충은 필수이다. 애초에 지자체 태반이 재정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고작 땜질 몇 번으로 타계할 순 없다. 지금 중앙정부의 역할은 파이를 나누는 게 아니라 파이를 키우는 것이 먼저다. 2014년 약속했던 4조 7천억원의 지방재정 확충 방안을 먼저 지켜야 한다.
화성시는 모든 기반시설이 열악하다. 퇴근 시간, 우리 시를 빠져나가는 차들로 도로가 빼곡하다. 시민들이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에 아직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도 많다.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해내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지자체와 파트너십을 가져주길 바란다.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답게, 지자체는 지자체답게, 서로의 역할을 다할 때 국민 행복이 열린다.
채인석 화성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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