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전에 함께 살았으면… 두고온 가족 생각에 ‘눈물’
“어릴적 부모와 강제로 헤어지고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과 딸을 이역만리 땅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던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지난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70여년의 세월을 보낸 김의순 할머니(83)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바로 사할린에 남겨 두고 온 딸, 손녀와 함께 한국 땅에서 사는 것. 김 할머니는 “앞으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동안만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면서 “영주귀국 제한에 가로막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강제징용으로 낯선 땅에서 힘겨운 날을 보내왔던 사할린 동포 1세들은 반세기가 훌쩍 넘어서야 꿈에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과는 함께 하지 못하는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
12일 대한적십자 등에 따르면 정부는 1945년 8월15일 이전 사할린 출생·거주한 한인과 그들의 배우자, 장애 자녀만 영주귀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지난 1989년 한일 양국 간 ‘사할린 한인지원 공동사업’ 추진 당시 러시아 정부가 사할린 동포의 대규모 한국 이주 등을 우려해 이 같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고향땅인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원했던 사할린 동포 1세들은 또 한번 가족을 남겨두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야만 했다. 고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이었지만, 강제징용 당시 겪었던 가족과의 생이별을 또 한번 겪게 된 이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가고 있다.
황의권 화성시사할린동포영주귀국자회 회장(75)은 “사할린에는 한국으로 귀국한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많은 2세가 있지만 영주귀국 제한에 막혀 눈물만 흘릴 뿐”이라며 “남북이산가족과 감히 비교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 역시 이산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정부든, 국회든, 국민이든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적십자사는 지난해 사할린 내 1세 동포들의 영주귀국 신청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2세 귀국 등에 대한 논의 없이 영주귀국사업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가 지난해 사할린 잔류 한인 1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앞으로 3년간 영주귀국 희망자는 2016년 7명, 2017년 3명, 2018년 1명이다.
정부는 앞으로 추가 희망자에 대해서는 일본과 관계없이 단독으로 귀국을 돕겠다며 영주귀국비용·초기정착비·생활비 등의 예산을 국회에서 통과시켰지만, 영주귀국 기준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어 사할린 한인 후손들의 반발은 거센 상태다.
사할린주이산가족협회 관계자는 “사할린 한인 2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0∼60대 응답자 대다수가 영주귀국을 희망했다”며 “1세만 귀국할 수 있는 신청대상을 2세로 확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영주귀국 사업과 관련한 각종 법안이 국회에서 논의됐음에도 영주귀국자 기준은 변함없는 상태”라면서 “사할린 외에도 강제징용 피해자가 많아 (사할린 동포의)가족 상봉 등을 정례화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또다른 방법으로 사할린 방문 기회를 마련하는 등 가족과의 만남을 지원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한진경·조승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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