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는 노인의 ‘구겨진 현실’
한달 내내 모아도 5만원 안팎 정부 차원 제도적 지원 절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만큼 강한 볕이 내리쬐던 25일 오후 1시께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서 만난 박금례 할머니(가명ㆍ85)가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훔치며 건넨 한마디다.
이날 새벽 5시에 집을 나선 박 할머니가 모은 폐지는 모두 15kg 분량. 재활용품 수집센터에 폐지를 넘기고 수중에 넣은 돈은 고작 1천원짜리 종이 돈 한 장이었다.
1kg 당 60원꼴로 2년 전과 비교하면 20원이나 떨어진 가격이다. 나라에서 나오는 기초연금 20만원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푼돈이라도 벌고자 매일 집을 나서지만 폐지를 모아 팔아 한 달에 버는 돈은 5만원 안팎이다.
박 할머니는 “우리 같은 사람이야 잘 모르니까 주는 대로 받아야지 별 수 있겠냐”면서도 못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다.
폐지 값은 보통 제지소에서 책정해 비정기적으로 재활용품 수집업체에 통보하면 그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로, 종이로 된 인쇄물의 감소와 지속적인 경기 불황 탓에 가격이 급락했다.
게다가 지난 2013년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도심에 있던 재활용품 수집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어 노인들이 폐지를 팔 곳마저 줄어들고 있다.
재활용품 수집센터 관계자는 “폐지 값이 내려가 어르신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라면서도 “한 푼이라도 더 쳐드리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떨어져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내 폐지 줍는 노인 인구가 4천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도가 연초 각 시ㆍ군 및 읍ㆍ면ㆍ동 단위로 일제조사를 시행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도내에는 4천86명의 노인이 폐지 수거 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이 565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부천(469명)과 안산(430명)이 그 뒤를 이었다. 경기도가 올 들어 폐지 수거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는 등 복지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효과는 미비하다.
이런 제도를 인지하고 활용하는 노인 수가 적고, 명확한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도는 올해 5억6천8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안전장비 및 안전교육, 방한복 등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노동 강도와 비교하면 수입이 적은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에 대한 보다 제도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노인들이 폐지를 수거 하면서 도시 환경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고 자원 재활용에도 좋은 효과를 끼치고 있는 만큼 이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춘식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은 “노인들이 폐지 수거 활동을 하는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 대부분이지만 환경 정화 등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 “격려 차원에서라도 이들을 생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병돈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