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따뜻한 미래] 부천시 ‘공유문화’

“책 나누고 아파트 주차장 함께 쓰고… 행복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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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지역에서 공유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공공기관과 아파트가 주차장을 공유하며 직원과 주민들의 편의를 높이고, 증권사 회의실을 주민들의 학습공간으로 개방하고, 서가에 쌓여있던 책을 주민들이 함께 나눠 보는 이음서재가 확대되고 있다.
‘공존(共存)’은 ‘서로 도와서 함께 존재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단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공존하기 힘든 지경에 다다른 것이 아닌지 걱정되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주차장 시비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간 불화가 발생하고, 다른 주민들이 통과하지 못하게 담을 높이는 아파트 단지가 한둘이 아니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가운데 ‘이웃 간의 정’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바로 부천지역에서다. 그동안 생각만 하고 ‘혹시’ 또는 ‘설마’ 하는 우려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던 여러 분야에서 서로 배려하고 나누는 일들이 일어났다. 

도시 생활에서 누구나 느끼는 불편함을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도와주고, 공유하면서 공존이란 새로운 문화가 나타났다.

주민들이 시의 중재 하에 주차장을 공유하고, 기관이나 기업들이 회의실을 공유하고, 개인이 소장만 해두고 있던 책을 타인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공유함으로써 공존하는 법을 찾아가는 부천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비워두지 않고 공유하며 모두의 편리함 높이는 주차장 공유

공유의 첫번째는 주차 문제 해결에서 시작됐다. 행정기관 주차장을 시민들에게 양보하고, 시민들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대에는 공동주택 주차장을 직원들이 이용하도록 만들면서다.

행정기관을 방문하는 시민들은 주차할 공간이 없어 이리저리 헤매지 않아도 되고, 직원들은 마음 편히 주차하고 일할 수 있도록 묘안을 찾은 것이다.

 

시청 지하주차장 주차 민원 해결의 실마리가 된 이 주차장 공유법은 복사골문화센터로 전파됐고 현재 행정복지센터로까지 확산되면서 점점 확대되고 있다. 

복사골문화센터는 꿈동산신안·한아름2차(242면), 중4동은 은하마을·금강마을(60면), 괴안동은 조공2차(70면), 성곡동은 휴먼시아2단지(90면) 등과 부설주차장 이용 협약을 맺었다. 또 원미보건소는 리첸시아(108면), 심곡2동은 우민늘사랑·성가병원(61면), 상2동은 하얀마을·현대(110면) 등도 주차장 공유에 동참했다. 

복사골문화센터(사랑마을·벽산삼익선경-20면), 원미보건소(연화마을·리첸시아-60면), 원미3(은하마을·대우동부-30면), 오정1(휴먼시아2단지-30면), 원2동 주민센터(원미 풍림-10면) 등은 현재 공동주택과 주차장 공유를 협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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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공간을 제공하는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행정, 재정적 지원이라는 인센티브가 주어져 행정기관과 공동주택 모두 ‘윈윈’이 됐다. 시 직원들은 주차하기 편해졌고, 공동주택 시민들은 평일 오전, 오후 비어있던 주차장을 개방함으로써 도로 도색, CCTV 설치 등의 혜택을 보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소사3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을 위해 아파트 부설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한 조공2차 아파트의 박상만 입주자대표회장(50)은 “입주민들에게 사전에 다 공개하고,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통과돼 부설주차장 공유정책에 동참하게 됐다”며 “부천시에서 먼저 문의를 해왔는데 상당히 좋은 내용이라 주차장 함께 쓰기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 주민들에게 소통의 공간으로 개방하는 ‘우리동네 학습공간’

부천시에 있는 카페, 무료급식소, 증권사 지점 등이 공존의 장소로 변신했다. 시민들이 소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들 공간을 ‘우리동네 학습시설’로 활용키로 한 것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비용을 지급하거나 목적이 있어야만 출입이 가능했던 각종 시설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개방을 유도하고, 동참한 시설은 시로부터 각종 지원을 제공했다. 이렇게 공유된 공간은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평생학습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대신증권 부천지점은 밸런스룸을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우리동네 학습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마을카페달토, 일층카페, 부천효인성교육원, 카툰캠퍼스, 가족공감네트워크, 통합예술나눔터함성창작소, 한국오카리나총연합 부천지부 등도 공간 개방에 동참했다. 

또 향기네사랑방, 타악퍼포먼스 난타도리깨연구소, 청신아트공예연구회, 홈플러스(소사점ㆍ여월점) 등도 우리동네 학습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시민들은 이들 시설이 개방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이곳을 이용하면서 삶의 여유를 되찾고 있다.

 

향기네 무료급식소는 자원봉사자들이 휴식을 취하던 ‘향기네 사랑방’을 ‘퇴근길 학습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사랑방을 직장인을 위한 퇴근길 학습공간으로 꾸미고 최근 6주 과정의 교육을 마쳤다. 사진, 노래교실 등의 프로그램으로 1차 교육을 마친 향기네 사랑방은 8월 넷째주에 시작되는 2차 교육에 가죽공예까지 추가했다. 

급식소 관계자는 “평소 무료급식소 자원봉사자들이 쉬던 공간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부천시의 퇴근길 학습공간에 참여하게 됐다”며 “직장들 반응이 너무 좋아 2차는 8주로 늘렸다”고 말했다.

 

■ 다시 보지 않을 책을 나누며 책을 이어가는 이음서재

책을 통한 공존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시민들이 서가에만 묵혀뒀던 책을 ‘이음서재’로 옮겨와 이웃과 공유하는 것이다. 한번 본 책은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에 서가를 만들어 이웃과 함께 지식과 가치를 나누자는 취지에서다.

 

지난 3월 한울빛도서관에 ‘이음서재 1호관’이 생기면서 책을 통한 공존의 첫 걸음을 뗐다. 이음서재 책 기증자들은 자신들이 기증하게 된 동기를 밝히면서 공존의 의미와 함께 삶의 지혜도 주고 있다.

‘성적은 우열이 있어도 꿈은 우열이 없다’(김만수 부천시장), ‘책을 읽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여행’(전태현 황해경제자유구역청장), ‘책으로 만나는 세계 이웃’(정성희 작은도서관 운동가),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도 책을 읽지 못한다’(이미경 교육청 감사관) 등의 책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음도서관 책은 한울빛도서관 2천26권, 북부도서관 900권, 원미도서관 400권, 꿈여울도서관 350권, 송내도서관 540권, 오정도서관 300권, 상동도서관 600권 등이다.

 

결혼 31주년을 기념해 310권을 기증한 김미숙씨(58·여·부천시 원미1동)는 첫 기증 이후 ‘공유 매력’에 빠져 두 차례 더 이음서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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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책 815권은 부천시가 조성한 두 곳의 이음서재에서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김씨는 “세자녀를 키우면서 산 책들을 부천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 이음서재에 기증하게 됐다”며 “선배 학부모로서 후배 학부모들과 공유하는 싶은 마음도 컸다”고 말했다. 

이어 “책 욕심이 많아 서재에 있는 책만 봐도 뿌듯했다”며 “하지만 집에 있으면 우리 가족밖에 보지 못하는데, 이음서재에 있으면 부천 시민들과 함께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또한 자기개발, 고전, 인문학, 역사, 소설 등 540권을 이음서재에 기증한 윤기오씨(63·부천시 중2동)는 “젊은이들이 책을 통해 인성을 갖추길 바라는 마음에서 기증했다”고 말하며 “최근 핵가족화가 되면 우리 사회에 이기심, 이타심 문제가 심각하다”며 “인문학 책을 통해 젊은층들이 인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공유경제는 개인을 넘어 우리를, 경쟁을 넘어 협력을 지향하는 행복한 부천시민을 상징하는 문화가 될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공유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부천=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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