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은 명종에게 ‘을묘상소’를 올린 적이 있어요.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쓴 단성소(丹城疏)라 불리는 ‘을묘사직상소’가! 1556년의 일이었죠. 상소의 일부를 옮겨 볼게요.
“나라의 근본은 이미 망했습니다. 이미 하늘의 뜻도 떠나갔으며, 인심도 떠났습니다. 비유컨대, 이 나라는 백 년 동안 벌레가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말라버린 큰 나무와 같습니다. 언제 폭풍우가 닥쳐와 쓰러질지 모를 지경이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습니다. 내직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당파와 권세 불리기에 여념이 없고, 외직에 있는 벼슬아치들은 들판에서 이리가 날뛰듯 백성들을 수탈하고 있습니다.”
남명 선생이 몸에 찬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 소리를 들으며, 늘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면서 타락한 권력과 무기력한 지식인을 질타했지요. 이아람 작가의 ‘행복자신플랜’을 보면서 저는 남명 선생의 상소를 떠올렸고, 그 상소에 비추어 곪을 대로 곪아 버린 ‘헬조선’의 대한민국과 ‘지옥불반도’를 살고 있는 청춘들의 삶을 생각했어요.
“죽창요? ‘금수저’들이 연애 자랑, 여행 자랑, 자기 뭐 먹은 거, 자동차 산 거 자랑하면 ‘그래 봤자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죽창 앞에서는 다 평등하다’고 댓글 달아요. ‘네까짓 게 금수저라고 아무리 잘난 척해도 죽창 앞에서는 너나 나나 한방에 나가 죽는 평등한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인데 속이 시원해지죠.”
지난 해 10월 어느 신문 기사에 실린 인터뷰예요. 저는 깜짝 놀랐죠. “속이 시원하다고요? 서로 죽이는 게 ‘평등한 존재’라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내 안에서 따져 묻는 소리가 빗발쳤어요. 하지만 그의 말은 울분과 분노와 저항의 외침 따위가 아니라 좌절과 회한과 포기의 절망이 뱉어내는 비수였기에 따져 물을 수 없었죠.
1970년 청년 김지하가 『사상계』에 발표했던 ‘오적(五賊)’과 비교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어요. 초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는 그 말들이 쏟아내는 표적의 원경일 따름이었죠. 어쩌면 비수의 근경에는 역설적이게도 ‘너나 나나’의 ‘너나들’이 존재할 거예요.
‘너와 나’는 둘이 아니죠. “너 죽고 나죽자!”라는 극단적 허무주의와 비관주의는 바로 모든 ‘너들’의 ‘나’에게 죽창을 던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두산에서 ‘노예 12년’을 보내고 탈출한 한 사내는 이런 증언을 남겼어요.
“비단 남의 일이 아니고, 결국엔 돌고 돌아서 내 일로 올 것이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비단 ‘두산인프라코어’만이 아니라, 그놈의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소리 좀 하지 말고, 그놈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소리 좀 하지 말고. 불합리한 것에 관심을 갖고 공감을 했으면 좋겠어요. 결국엔 우리가 함께 바꾸는 거니까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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