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광복절 행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는 북편(北便)을 바라보고 원감(怨感)을 금(禁)할 수 없다”. 남한 정부 출범에 따른 반쪽짜리 해방에 대한 반성과 아쉬움이 서려 있다. 이후 우리나라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는 통일을 향한 대북 메시지가 반드시 들어갔다. 이 대통령의 그것이 단순히 분단 조국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것이라면 이후 대통령들의 그것은 통일을 향한 실천 가능한 메시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 평화통일 기본 3원칙을 밝혔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자주ㆍ평화ㆍ민주를 통일의 3원칙으로 제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한반도 평화정착 3대 원칙을 제안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대북정책 3대 원칙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남북경제공동체 설립을 제안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9년 신평화구상을 공개했다. 모두 그 해 광복절 축사를 통해 발표된 대북 메시지이자 통일 구상이었다.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북한 당국에게 조건과 함께 약속을 던졌다. ‘북이 적화통일 야욕을 버린다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이란 조건이 붙었고, ‘체제를 인정하겠다’ ‘경제를 돕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남북 관계는 최악이었다. 2008년 7월 금강산 여행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에게 피격을 당했다. 2009년 광복절은 그런 상황에서 맞았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의 통일 구상과 대북 약속은 빠지지 않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축사에도 대북 메시지는 포함됐다. 북한 당국을 향해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대남 도발 위협을 즉각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 인권과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할 권리를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했다. 북한 당국 간부와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통일 시대를 열어가는데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전체적으로 핵 포기를 강하게 종용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점이 유감이다. 과거 대통령들이 광복절 축사에 통일 메시지를 넣은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의 해방과 광복은 반쪽짜리다. 남북한이 분단된 미완성 해방이고 광복이다. 이를 하나로 만들어야 할 과업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있다. 그 과업을 미래지향적으로 선언하는 계기가 바로 광복절 기념 축사였다. 그리고 그 통일 메시지에는 반드시 ‘무엇을 해주겠다’는 당근과 같은 약속이 있었다. 이번 축사에는 그 당근이 없었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혹시 이유로 들지 모른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경색은 과거 어느 대통령 때나 마찬가지였다. 무장 공비가 설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서해교전이 발생한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 시절, 모든 남북 교류가 중단된 -이명박 대통령-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대통령들은 미래를 향한 희망적 통일 메시지를 던졌다.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약속도 했고, 경제에 협력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분명히 이번 경축사와는 달랐다.
북한은 우리 대통령의 통치력이 닿지 않는 집단이다. ‘국제 사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나 ‘우리식 통일에 동참하라’는 설득만으로 변화에 나설 집단이 아니다. 지금의 관계를 뛰어넘는 미래 지향적 통일 메시지가 있었어야 했다. 북한이 득과 실의 주판알을 튕겨볼 만한 내용이 있었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광복절 축사도 이제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이번 축사가 주는 아쉬움이 그래서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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