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기슬기의 ‘사라지다’

▲ Post Tenebras Lux_사라지다 04 Archival pigment print,135 x90cm 2014

기슬기 작가의 작품은 ‘Post Tenebras Lux_사라지다’가 원래 제목이에요. ‘Post Tenebras Lux’는 라틴어로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는 뜻이죠. 음악과 소설, 영화제목으로도 종종 사용되기도 했던 이 말은 16세기 칼뱅 종교개혁의 슬로건이었어요. 그리고 그 말은 또 ‘빛 속으로’의 뜻을 가지기도 하죠.

 

이 작품은 아일랜드에서 처음 구상했다고 해요. 그가 레지던스로 가 있었던 지역은 안개가 심해서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날들이 많았어요. 안개는 미세한 수증기가 응결해서 대지의 지표 가까이에 떠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죠. 대지에 내려앉은 구름이라 할 수 있어요.

 

그는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의 세계와 안개가 걷히고 난 뒤의 ‘보이는’ 세계를 미학적으로 사유한 듯해요. 보이지 않는 세계는 ‘환(幻)’이고, 보이는 세계는 ‘영(影)’으로…. 그는 카메라 조리개를 열어놓고 나무 뒤로 가서 춤을 추었어요.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의 춤을 춘 것이죠. 춤의 ‘자취’로 남은 것이 ‘빛 속으로 사라지다’예요. 이 작품은 몇 개의 연작으로 이어졌어요.

 

사라지는 것과 안 보이는 것, 감추는 것의 차이는 미묘하나 커요. 그의 작품들은 안 보이게 하거나 감추려는 의도보다는 ‘사라지는’ 것에 가까운 주제이고 또한 그것이 사진이기 때문이에요. ‘사라지다’의 우리말 뜻은 사라지는 것의 대상이 현상이냐, 사물이냐, 생각이냐에 따라 달라요. 현상과 사물은 ‘자취’의 문제이고 생각은 ‘의식’의 문제이니까요. 그래서 ‘자취’는 존재와 밀접하고 ‘의식’ 감정에 가깝죠.

 

사라지다의 어원은 ‘?라디다’로 『월인석보』(1459)에 나오는데, 그것은 ‘?’과 ‘아디’가 붙어서 생긴 말이지만, 이 두 개의 용언이 함축했던 의미를 ‘?라디다’가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을 몸뚱이나 생각 따위로 해석한다면 모를까. 사실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평적 해석의 단초가 시작될 수 있어요.

 

‘?’은 ‘살’로서 ‘몸’을 상상하기에 충분하잖아요. 기슬기의 ‘사라지다’는 하나의 자취로서 ‘나’의 존재와 상관(相觀)하고 또한 그것은 몸뚱이에서 제나로, 참나로, 다시 얼숨으로 흩어지고 사라지는 얼생명의 총체적 기운생동(氣韻生動), 즉 충일한 기운활동을 상징할 거예요.

 

인도의 수행자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1879~1950)는 『나는 누구인가』에서 이렇게 물었어요. “나는 육체가 아니다. 정신도 아니다. 인격도 감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마하리쉬는 기슬기가 스스로 의문했던 것처럼 ‘나’의 환을 벗어 던지고 난 뒤의 ‘나’에 대해서 먼저 사유했는데, 그는 “나는 나로써 남는다.”는 결론에 이르죠.

 

보이는 세계에서 ‘환’의 실체는 작가 자신이 직접 ‘환’이 되는 방법 밖에는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 환이 빛이 될 때 ‘나’는 얼숨의 생명이 되는 거고요.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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