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천 살리고… 벽화 그리고… 골목마다 웃음꽃 활짝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 바쁜 현대인들은 이제 자기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 마을’이라는 개념도 희미해진지 오래다. 이런 삭막해진 마을에 이웃 간의 정과 공동체 정신을 불어넣는 이들이 있다.
용인시 처인구 유방동의 봉사단체 ‘사립문(회장 김진희)’이 그 주인공이다. 사립문은 나뭇가지, 갈대, 수수깡, 싸리 등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초가의 문을 일컫는다. 나뭇가지 등을 엮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안에서는 밖이 그리고 밖에서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철문 등 앞이 탁 막히는 문보다 드나듦의 자유가 있다.
이웃의 마음의 문을 열고, 내부 공동체 의식을 키워 마을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립문은 오늘도 작지만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웃 간의 정과 사랑, 공동체 의식을 피워내는 사립문의 따뜻한 이야기를 따라가봤다.
■ 주민들 모두 마을의 변화 실감… 봇뜰한마당잔치에서 활동 경과 확인
지난 18일 오후 1시께 용인시 처인구 유림동의 사립문 사무실. 33㎡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8명의 봉사 단원이 잔치에서 나눠줄 300인분의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새끼손가락을 베이고 눈은 양파 때문에 따갑지만, 음식을 만드는 봉사 단원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열심히 파를 썰고 있던 강임두씨(65ㆍ여)는 “오늘은 그동안 마을주민들과 봉사단체의 교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라 설렌다”면서 “마을 주민들이 우리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서로 행복할 모습을 생각하니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사립문이 시끌벅적한 이유는 마을 주민과 함께 사립문의 활동 경과를 확인하며 소통의 시간을 보내는 ‘봇뜰한마당잔치’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300명이 참여한 이번 행사에는 사립문 봉사단원 20명을 비롯해 마을주민 20명도 잔치를 같이 준비하며 그동안 쌓아온 공동체 의식을 기록하는 자리가 됐다. 잔치에 참여한 주민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 밝게 인사하고, 달라진 마을 풍경을 보며 서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음식을 주고받고, 체험 행사에 참여하며 봉사단체와 주민들은 달라진 마을 분위기를 보고 웃음꽃을 피웠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찬민 용인시장은 “유방동에 웃음소리를 키워준 사립문에 감사하다”면서 “다시 단단해진 공동체 의식이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 장애인 미술 치료 활동부터 벽화 그리기까지… 마을에 생기 불어넣다
사립문은 지난 2005년 발족해 2007년 장애인 시설 미술 치료 활동 등을 지원하며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9년부터는 지역 학생 장학금 지급, 경안천 환경 캠페인, 벽화작업 등의 활동을 하며 유방동 일대를 바꾸기 위한 단체로 자리 잡았다. 사립문에 따르면 유방동 일대는 용인시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3년 전만 해도 1년 동안 전체 가구 중 5분의 1 이상이 전출하는 지역이었다.
김진희 사립문 회장은 “유방동 일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2~3년이 지나다 보니 이 지역의 공동체 의식이 무너져 주민들이 마을에 애착을 못 갖고 자꾸 외지로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서 “단순히 외형적으로 마을을 바꾸기보다는 내부 공동체 의식을 키워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고자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된 ‘마을 벽화 그리기’는 사립문의 대표적인 봉사 활동으로 손꼽힌다. 칙칙한 마을 분위기를 생기있게 바꾸고자 시작된 마을 벽화 그리기로 동네가 밝아지면서 마을주민들도 즐거워하고 있다. 특히 유방동 일대 빌라 단지는 벽면에 어린 왕자와 동물 등이 그려지고부터 지역의 명소로 불리고 있다.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사립문은 이에 걸맞게 올해부터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벽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립문의 유방동 벽화 그리기는 용인시 일대에 소문이 퍼지며,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 삼삼경로당, 유림동 유림동굴 다리, 용인동부경찰서 벽화까지 이어졌다.
마을 주민인 황명진씨(48ㆍ여)는 “전국의 유명 벽화마을처럼 변하는 우리 동네를 보며 뿌듯하다”면서 “땡볕에 우산까지 쓰며 페인트칠을 했지만, 단순 고생이 아니라 힐링으로 느껴진다”고 참여 소감을 밝혔다.
■ 마을 주민 스스로 관리하는 유방동이 되기를… 제2의 유방동도 만들고 싶어
사립문은 지난 2010년부터 마을 인근에서 ‘추억의 반딧불이 살리기, 경안천 캠페인’을 통해 환경 보전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용인시민과 함께 정기적으로 경안천 주변 환경을 정화하고, 주민 등을 대상으로 깨끗한 하천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벌인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2011년에는 환경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또 마을주민 간 소통의 시간을 마련하고자 매주 풍선아트, 전래놀이, 생태 교육 등을 운영한다.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을 하고, 정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다. 사립문은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으로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립문의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한 박원철씨(47)는 “봉사 활동을 하기 전에는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남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면서 “같이 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마을 주민도 봉사 활동을 통해 나처럼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립문의 최종 목표는 유방동에서 더는 자신들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벽화 그리기, 잔치,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교류가 깊어진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발휘해 마을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하는 게 사립문의 목표다.
김진희 사립문 회장은 “봉사 활동은 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재미를 유방동 주민에게 전파하느라 10년이 걸렸고 이제 마을 주민들 스스로 재미를 찾아가는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아직은 이 마을에서 할 일이 많아 다른 지역에 갈 엄두가 안 나지만, 제2의 유방동이 생겨나 전국 곳곳에서 이웃 주민들끼리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여승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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