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때 만들어진 596기 사람 접근 없어 보존상태 양호 지난 2000년 세계유산 공인도
보호각 발굴지선 내부모습 공개 당시 축조방법 등 궁금증 해결
덮개돌을 받침돌로 괴어 만드는 선사시대 무덤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세계 거석문화의 중요한 부류로,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인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유네스코도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을 2000년 세계유산으로 공인했다. 이번 주말 다양한 거석문화가 살아 있는 전남 화순으로 떠나보자.
■ 다양한 전설이 깃든 ‘화순 고인돌유적’
화순에는 고인돌 596기가 빽빽이 모여 있다. 청동기시대인 3000~2500년 전 축조한 고인돌이다. 이 일대는 옛날 보성과 나주를 잇는 보검재가 있었다. 고인돌은 남쪽 기슭에 분포한 덕분에 논 주변의 고인돌처럼 훼손되는 일이 적고, 사람이 접근하는 일이 빈번하지 않아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화순 고인돌유적 탐방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5㎞ 구간에서 진행한다. 한길을 따라 분포해서 주요 고인돌을 보며 이동하기 편리하다. 비포장도로지만 넓어서 자동차로 돌아볼 수 있다. 걸어서 돌아볼 때는 길가의 코스모스가 여행자를 반겨준다.
화순 고인돌유적은 괴바위처럼 재미난 이름과 이야기가 많아 흥미롭다. 관청바위는 원님이 보검재를 넘다가 바위에서 쉴 때 민원을 처리해서 붙은 이름이다. 달바위는 도로 아래쪽 달덩이 같은 타원형 고인돌이다.
핑매바위는 덮개돌 길이 700㎝, 높이 400㎝, 무게 200t이 넘는 대형 고인돌로, 그 이름에 운주사 천탑 이야기가 녹아들었다. 마고할매가 천탑을 쌓기 위해 큰 돌을 가져가다가, 닭이 울어 늦었다는 걸 알고 화가 나서 발로 찬 돌이다. 핑매는 돌팔매를 뜻하는 사투리다.
바위에 지름 약 40㎝ 구멍이 있어 왼손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핑매바위 북쪽 기슭 정상은 각시바위 채석장이다. 이 또한 마고할매가 두고 간 돌이다. 마치 상자를 쌓은 듯해 채석에 유리했음을 알 수 있다.
화순 고인돌유적은 주요 고인돌 주변에 채석장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고인돌은 도로 옆에 무리 지어 있고, 기슭에 응회암 절벽이 보인다.
관청바위 고인돌 가까이 마당바위 채석장, 핑매바위 고인돌 북쪽에 각시바위 채석장 등이 위치한다. 고인돌 옆으로 나무 계단 접근로가 마련되어 올라갈 수 있다. 그 가운데 감태바위 채석장이 접근성 좋고 흔적도 비교적 또렷하며, 감태바위 고인돌군에는 탁자식, 기반식(바둑판식), 개석식 고인돌이 모두 있다.
감태바위 고인돌군을 지나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이다. 고인돌 유적은 그 안을 볼 수 없어 아쉬울 때가 많은데, 보호각에서 궁금증을 해소한다. 시신을 안치한 널방과 출토 유물 등 덮개돌 아래 고인돌의 내부 구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고인돌 조성 방법을 순서대로 그린 그림 역시 유용하다. 이 때문에 대신리를 출발점으로 삼는 이도 적잖다. 아는 만큼 보이니 고인돌에 대한 이해가 한층 빠르다. 여유가 없다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과 감태바위 고인돌군, 감태바위 채석장 코스가 무난하다.
화순 고인돌유적에서 남서쪽으로 약 13㎞ 거리에 위치한 운주사는 화순 돌 문화의 흔적을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이다. 석불 1천 구와 석탑 1천 기로 유명하지만 ‘동국여지승람’ 외에는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은 석탑 17기와 석불 80여 기가 남았다.
석탑은 불감 안에 불상 2구가 등을 맞댄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797호), 몸돌과 지붕돌이 원형인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보물 798호)이 특이하다. 석불은 대체로 정교하기보다 친근한 인상이 정감 있다. 그 가운데 와형석조여래불 2구가 유명하다.
운주사 서쪽 정상에 머리를 남쪽으로 하고 누운 길이 12.7m, 10.3m 석불이다. 도선국사가 마지막에 완성한 천불로, 새벽닭이 울어 미처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와불이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전설이 운주사를 한층 신비롭게 한다.
홍완식기자
자료ㆍ사진=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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