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스토리] 추억을 찾아드립니다
이발관·목욕탕·다방에 옛 영화까지 ‘응답하라’ 시리즈 인기끌며 복고열풍
‘스마트 세상’에 지쳐가는 현대인들 과거 회귀 통해 삶의 활력소 재충전
십수 명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은 이웃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발사의 손때가 묻은 이발기와 가위가 머리에 닿으면 이내 거울 속 신사와 마주하게 되고, 명절 맞이 준비는 끝이 난다.
이제는 이런 풍경을 찾기 어려워졌다. 동네 이발관은 이미 대형 가맹점 미용실로 바뀐 지 오래다. 사라진 것은 이발관뿐만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악을 들으며 밤을 지새웠던 음악다방을 비롯해 단관극장, 책방 등은 어느새 음원 사이트와 대형 가맹점 극장, 전자책 등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추억이 사라진 건 아니다. 오히려 팍팍한 우리네 삶에 포근했던 옛 기억을 떠올려주며 지친 일상에 힘이 되어주고 있다. 올해 tvN을 통해 방영된 ‘응답하라 1988’은 80년대 감수성을 자극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가 가져온 추억 열풍은 우리 주변에서 과거의 가치를 그대로 지닌 이발소, LP 음악다방 등을 다시 조명했다. 문화계에서도 복고 열풍은 거셌다. 2010년 들어서부터 인터넷서점에서 LP 판매량은 연간 두 자릿수 이상씩 증가했다.
매끄러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음원 대신 옛 음악을 ‘있는 그대로’ 누리겠다는 대중의 욕구가 커진 영향이었다. 추억으로 회귀는 영화계 ‘재개봉 열풍’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재개봉해 3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대박’을 일으킨 ‘이터널 선샤인(감독 미셸 공드리, 2005)’ 이후 올해에만 ‘인생은 아름다워’, ‘러브레터’, ‘영웅본색’, ‘쇼생크 탈출’, ‘비포 선라이즈’ 등 예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추억이라는 키워드가 우리에게 뜨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캐나다 철학자 앤드류 포터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The Authenticity Hoax)’에서 복고와 향수를 진정성 추구로 해석했다. 현대인들은 화려하고 편안한 지금의 삶으론 영혼 깊은 곳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어 인생에 더 중요한 뭔가를 얻고자 진정성 찾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가족보다 나았던 이웃사촌, 라디오 한 대 앞에 옹기종기 모여 지새우던 밤, 학교에서 책상 붙여 나눠 먹던 도시락…. ‘진짜’ 이웃이었고 ‘진심을 나누는’ 친구였고 ‘진정한’ 엄마의 손맛이 있었던 과거를 소환한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세계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해 질 녘까지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골목길을 누비던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테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일상을 생각할 때보다 과거 추억을 떠올릴 때 기쁨, 만족 등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한다”면서 “추억을 회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따뜻함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일으켜 현시대에 중요한 키워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족의 대명절 추석 연휴가 5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ㆍ친구들과 함께 그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따뜻한 명절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그 시절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추억의 장소와 현시대에 맞춰 새롭게 탄생한 추억의 아이템들이 주변에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여승구ㆍ유병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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