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가 유례없는 수난을 겪고 있다. 인천지법 김수천 부장판사(57)의 청탁 재판 혐의와 인천지검 외사부장 출신 김형준 부장검사(46)의 스폰서 비리 의혹 등이 법조계의 생명인 ‘신뢰’를 추락시키고, 법원·검찰 전체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특히 법원 판결 신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김 부장판사의 불공정 재판 후유증 우려가 현실화됨으로써 지역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과거 김 부장판사가 1심보다 4배 이상 많은 형량을 선고한 별건의 항소심 사건을 재심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 법원의 고뇌가 깊어지고 있는 거다.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일 구속한 김 부장판사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51·수감 중)로부터 1억7천만원대 금품 로비를 받고 네이처리퍼블릭에 유리한 판결을 해준 혐의가 드러나 충격을 줬다. 검찰에 따르면 김 부장판사는 네이처리퍼블릭의 유명 화장품을 위조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9명의 항소심 3건을 맡았다. 그 중 지난해 9월 선고된 사건은 재판부가 피고인들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선고 형량 징역1년을 징역 10개월로 감형했다. 그러나 그 후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위조범에 엄한 처벌을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두 달 뒤인 11월 중순 선고된 두 사건은 1심의 집행유예를 6~8월의 실형으로 형량을 높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런데 인천지법의 석연찮은 해명이 문제다. 김 부장판사가 구속되기 전 이런 의혹이 일자 지난 8월 17일 인천지법은 지난해 9~11월 김 부장판사가 맡은 네이처리퍼블릭 화장품 위조사건 항소심 3건을 분석한 결과 “각 사건의 양형 참작 사유를 충분히 고려한 판결로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사건과 관련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6일 사과함으로써 당시 인천지법 해명이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된 거다. 법원 해명이 되레 신뢰성을 더 추락시켰는데도 인천지법은 아직 사과 한마디 없다.
이런 불신 때문에 김 부장판사가 과거에 맡은 다른 항소심의 ‘고무줄 판결’이 또 도마에 오른 거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인터넷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피고인 A씨 항소심에서 1심의 징역 10개월 선고를 파기하고, 특별한 설명 없이 1심 형량의 4배가 넘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합의체 판결문에서 “이 같은 형량 선고는 자제해야 한다”고 이례적으로 판시했다. 결국 피고인 A씨는 지난 5월 재심을 신청했고, 지역 법조계 역시 재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법원은 지체 없이 재심을 통한 공정 재판으로 추락한 신뢰를 그나마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망가진 법관 정체성 재정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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