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남궁산의 ‘생명-아름다운 동행’

▲ 생명-아름다운 동행

산 위로 둥근 달이 떴네요. 휘영청 밝은 달이 한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어요. 저 달빛을 길 삼아 새들이 밤하늘을 가로질러 가요. 가을이 되면 사람도 짐승도 길벗과 함께 첫 둥지의 본향을 찾지요. 그렇게 추석 귀향을 끝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한 주를 맞이했네요.

 

본향을 찾는 사람들은 아마도 저 달빛의 매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달빛 세계의 풍경에 홀딱 빠져서 살았었죠. 달이 뜨면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리며 싸돌아 다녔고 계집애 사내 할 것 없이 이쪽저쪽으로 어울려 이야기 함박꽃을 터트리곤 했잖아요.

 

웃음꽃 향기가 흘러서 모이고 여울이 질 때는 골목마다 달빛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순간이었어요. 동구 밖 어귀를 떠돌던 말들이 신작로를 타고 돌다 미끄러져 동네로 쏘옥 파고들기도 했고요. 그러면 그날 밤은 벗들의 숨어서 놀던 방방들이 밝달 아래 다 들통 나곤 했지요.

 

달빛에 휩싸인 세계는 산 숲이 겹겹을 이룬 곳에서 더 황홀했어요. 멀리서 보면 시커먼 그림자가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 선으로 남죠. 하지만 가까이 그 안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면 달빛 어린 나무들의 몸에서 은빛 비늘이 돋아 꿈틀 거려요. 때때로 그것들은 머리채를 뒤흔들며 하늘로 치솟기도 하고요.

 

온통 나무들이 용솟음으로 뒤흔들릴 때 우리는, 물론 아주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에 숨어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달의 비경을 훔쳐 볼 수도 있어요. 감감한 어둠 너머로 열린 그 세계는 참으로 휘황찬란하죠. 은하계의 별들이 생명의 빛으로 활활 거리는 천지밭이니까요.

 

가을밤은 그 세계의 창이 자주 열리는 날들일 거예요. 지난주에 저는 새벽길을 달리면서 내내 그 생각에 젖었었죠. 어린 날의 저는 자주 그 너머의 세계에 발을 들였었거든요. 동백나무 군락을 휘젓고 다니다가 툭툭 떨어지는 붉은 동백꽃을 주우며 불현 듯 보게 된 거예요. 기억의 꼬리는 시속 120킬로미터로 달리는 차조차 무색케 하더군요.

 

저는 ‘생명-아름다운 동행’의 세 마리 새를 보면서 ‘삼인행’이라는 옛 말을 떠올렸어요. 함께 걷는 세 길벗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논어 술이편에, “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라는 말이 나와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스승이 있다는 얘기죠. 아마도 제 기억은 제가 고향을 찾던 그 순간의 길벗이었던 것 같아요.

 

굳이 꼭 사람 길벗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가는 길에서 길벗을 가져야 해요. 길벗은 길라잡이예요. 저 새들은 서로 길벗이면서 길잡이죠. 어느 길에서든 길잡이는 바뀔 수 있어요. 중요한 건 길을 밝히는 빛이죠. (달)빛이 스승이에요. 그 빛의 이야기를 잊지 말아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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