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기둥으로 버티는 안전 요즘 원룸, 지진에 속수무책

1층에 주차장 있는 필로티 건축 구조
건물 전체 무게 감당 못해 붕괴 위험
‘5층 이하’ 내진설계 확인 대상도 제외

▲ 22일 수원시내 한 주택가에 필로티 구조의 다세대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최근 경북 경주시 일대에서 지진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필로티 구조의 건축물이 지진에 취약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일고 있다. 김시범기자
최근 경주 지진의 여파로 지진 공포가 엄습하는 가운데 ‘필로티’ 건축물이 지진에 가장 취약한 구조인 것으로 확인됐다. 

얇은 기둥만으로 상부 건축물이 지진에 의해 흔들리는 ‘지진력’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5층 이하의 필로티 건축물은 건축구조설계사가 직접 내진설계를 확인하는 의무대상에서도 제외, 지진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다.

 

2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필로티 건축물은 지상 1층에 벽면 없이 기둥만 6~8개 세워 해당 공간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2층부터 가정집 등 건축물이 들어서는 형태다. 도심 속 원룸 밀집지역은 주차공간이 부족하고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1층 비선호 경향이 높아, 필로티 구조가 신축 원룸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는 1층 기둥이 무거운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형태여서 전문가들은 지진이 발생하면 붕괴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단 몇 개의 기둥이 흔들리는 건물 전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필로티 구조 건축물에 가벼운 목재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별다른 제재 없이 벽돌과 콘크리트 등 무거운 재료를 사용, 지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큰 실정이다.

또 지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필로티 건축물은 정작 전문가의 ‘내진설계 확인 대상’에도 제외됐다. 현행 건축법상 3층 이상 건물은 내진설계를 해야 하지만, 이 중 6층 이하 건물은 인허가 단계에서 내진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에게 내진 설계 여부를 확인받지 않아도 된다.

 

이로 인해 4~5층이 대부분인 필로티 형태의 원룸 등은 사실상 지진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지진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확인을 받지 않은 건물이 제대로 내진설계가 이뤄졌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탓에서다.

 

이때문에 필로티 건축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일반인보다 큰 상태다.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한 필로티 원룸 주택에 거주하는 P씨(31)는 “주차장이 없으면 불편해 필로티 원룸에 입주했는데 경주지진을 보고나니 지진이 나면 기둥으로만 받치는 집 전체가 무너질까 걱정된다”며 “필로티 건축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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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전문가들은 지진 피해 최소화를 위해 필로티 구조 건축을 지양하거나 법 개정을 통해 내진설계 확인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광량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회장은 “내진 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가 모든 건물의 내진설계를 확인토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장훈 아주대 건축공학과 교수도 “정부가 나서 필로티 구조 건물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경주 지진을 계기로 사회 전체가 지진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5층 이하 필로티 건축물도 건축구조설계사가 확인하지 않을 뿐, 내진설계는 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필로티 건축물이 일반 건축물보다 지진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현 3층 이상으로 규정된 내진설계 의무대상에 2층까지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선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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