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외면한 ‘환경책임보험’… 기업들 부글부글

석유·가스 등 유해물질 보관 사업장
환경부, 실사도 않고 의무보험 강제
많게는 수천만원 들어 부담 가중

정부가 석유나 가스 등 유해물질 보관 사업장에 대해 등급별로 최대 수천만 원의 보험을 의무화하면서 정작 실사는 하지도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장마다 유해물질을 보관하는 방법과 규모, 누출 시 피해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도 없이 의무 보험을 강제했다는 지적이다.

 

3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환경부는 올해부터 대기·수질·폐기물·토양 등 오염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사업장과 석유류 제조·저장시설 등에 대해 ‘환경책임보험’을 의무가입화 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지난 1월 ‘환경오염 피해구제법’이 시행됨에 따른 것으로, 환경오염 사고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기업)이 사고발생 시 처리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것을 우려하지 않고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전국 1만267개 기업(전체 1만7천597개 시설)이 지난 7월까지 의무보험가입 대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의무보험 시행에 앞서 환경부는 의무보험가입 대상 사업장에 대해 실사도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신 대기환경보전법과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오염물질 보유량과 사업장 크기 등을 기준으로 가·나·다 군으로 분류했다.

 

이로 인해 사업장들은 업장마다 상황이 모두 다른데 무작정 법적 기준으로 분류해 동일한 보험료를 내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위주로 편성된 가군은 매년 3천만 원을 넘는 보험료를 납부하는 등 비용부담이 큰 만큼 신중한 사전조사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석유류 제조·저장 시설을 운영하는 평택 A업체는 1천㎘ 유해물질 탱크를 보유해 나군으로 분류됐으나 보통 땅속에 유해물질 탱크를 매장하는 사업장과 달리 건축물 위에 설치, 누출 시 오염 위험성이 적은데도 같은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 

A업체 관계자는 “만일의 사고를 대비한다는 보험의 성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땅속에 매장된 탱크와 건축물 위에 설치된 탱크와는 상식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으냐”면서 “한번이라도 우리 사업장에 나와 실사를 했다면 감면을 하는 등 보험기준이 달라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월 국회예산정책처 역시 환경책임보험을 둘러싸고 환경부가 의무가입 사업장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고, 보험 판매와 자문 서비스 등도 미흡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실사를 안 했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유해시설은 법적으로 사업장 분류 기준이 정해있기 때문에 굳이 실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면서도 “그러나 사업 초기 단계라 업체 반발이 있으므로 고려하겠다”고 해명했다.

최해영·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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