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어주는 남자] 무명씨의 ‘사슴’

▲ 무명씨의 사슴

북쪽사람들은 한데에서 지내는 밤을 ‘한데밤’이라 불렀죠. 한데는 집 밖의 ‘바깥’을 뜻하기도 하고 아주 추운 곳을 가리키기도 해요. 또 한데는 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않은 곳이어서 ‘정한 자리’가 없는 곳이에요. 바깥미술회는 그 ‘한데’를 찾아 궁구했어요.

 

미학을 추궁하는 것은 때때로 미술의 바깥에서 시작될 필요가 있어요. 1981년 1월 하순, 겨울이 추위를 가장 날카롭게 벼른 때, 시대의 엄혹함을 살풀이하려는 예술가들이 경기도 가평의 대성리로 모여들었죠. 그렇게 ‘겨울, 대성리 31인전’은 현실의 바깥에서 현실을 직시하려는 작가들에 의해 탄생했어요.

 

그 이후 35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강물의 유속은 물밑과 표면이 다르듯 그들의 활동은 한국미술사의 바깥에서 ‘미술사’라는 유속과 해후하거나 갈라지면서 그들은 스스로의 독자적인 속도를 늘 유지했죠. 북한강변의 대성리 화랑포에서 25년, 자라섬에서 10년, 그리고 지난해 다시 화랑포로 돌아오는 동안 바깥미술은 생생지리(生生之理)의 자연미학을 보여주었던 거예요.

 

이번 달에는 바깥미술회 35주년 아카이브전이 양평군립미술관에서 개최됐어요. 그리고 전시가 열리던 날에는 “변경의 미학을 접신하는 사슴샤먼들”이라는 주제로 바깥미술포럼도 있었죠. 변경은 곧 경계이니, 바깥미술은 경계에서 터진 미학이요, 바로 그곳에서 ‘바깥정신’을 추궁했으니 그들이 곧 사슴샤먼이 아닐까 하는 거죠. 사슴샤먼이 왜 예술(가)와 만날까요?

 

오래전 퉁구스족 샤먼들은 머리에 사슴뿔 관을 쓰고 춤을 추고 북을 치며 노래했죠. 하늘과 땅과 물의 신들을 받고 이으면서 자연의 생명평화를 기원했어요. 사슴샤먼의 상징은 석가모니 부처의 첫 설법지인 사슴동산(鹿野苑)에서 찾을 수 있고, 사바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의 극락정토로 가는 배(般若龍船)에서도 볼 수 있어요. 용의 뿔이 사슴뿔이잖아요.

 

예술의 ‘예’(藝)가 본래 ‘심다, 기예, 궁극’의 생태성, 창조성, 철학성을 바탕으로 있고, ‘술’(術)이 술수로서 방술[方術:방사(方士)가 행하는 신선의 술법]이고 그래서 옛 중국에서는 선인(仙人), 방사, 술사를 모두 진인(眞人)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떠올려 보세요.

 

2012년 1월 하순, 바깥미술회 전시를 보러 아침 일찍 자라섬을 찾았다가 이 작품을 보게 되었어요. 언제 누가 설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아마도 문병탁 작가가 아니었을까 추론해 볼 따름이에요. 초대작가로 참여했던 문병탁 작가는 종종 겨울 숲에 나무토막을 이어서 쓰레기를 먹는 신성한 동물을 만들어 놓곤 했거든요.

 

작품은 이미 오래전에 설치 한 것이었고 그것이 세월을 견디며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숭고했어요. 아침햇살을 받으며 마치 자연을 어슬렁거리며 걷는 그 모습에서 ‘바깥미학’의 정수를 본 것이죠.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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