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 농약 담긴채 넘쳐 나는데
설치 주체 제각각 제때 수거 안돼
자살예방 제역할 못해 관리 시급
더욱이 설치 주체가 제각각인 탓에 수거함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현황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는 등 관리부실 해결을 위한 후속 조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8일 오후 2시께 용인시 석천리의 한 노인회관에 바로 앞에 설치된 수거함 안에는 각종 농약 빈병 수백 개가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이 중 수십개의 병 안에는 잔류 농약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샛노란 색으로 칠한 탓에 멀리서도 한눈에 띄는 수거함은 별다른 잠금장치조차 없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잔류농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마을주민 S씨(66·여)는 “지난 초여름에 해당 수거함이 생겼다. 자살을 막고자 설치한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해당 수거함은 설치 후 단 한 번도 거둬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 화성시 팔탄면의 마을회관도 사정은 마찬가지. 이곳도 어느새 가득 찬 수거함 주변에 잔류 농약이 담긴 빈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해당 수거함들은 경기도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노인 음독자살을 막고자 설치한 것이다. 앞서 도는 지난 2월 이후 87개의 수거함을 설치하는 등 시골 곳곳에 수거함을 설치해왔다.
그러나 설치된 수거함의 빈병이 수거가 안되며 오히려 잔류농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곳으로 전락, 설치 취지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이 설치한 수거함 외에도 다른 기관, 다른 부서에서 같은 목적으로 설치한 유사한 수거함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문제를 더하고 있다. 어떤것은 도가, 어떤것은 보건소가, 어떤 것은 각 시·군 등이 제각각 설치했지만, 사후 관리 책임은 서로 미루고 있어 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는 한국환경공단에 수거를 일괄 위임, 농약빈병을 주기적으로 가져간다고 했지만 한국환경공단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일괄 수거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공단관계자는 “수거함이 어디에 얼마나 분포돼 있는지에 대한 자료가 전혀없다”며 “수거를 요청하는 쪽에 한해 수거한다. 일괄수거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자살을 예방하겠다는 수거함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관계기관의 시급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수거와 관리의 책임을 사실상 지역 노인들에게 위임해 놨다.
그러나 노인들은 이를 어떻게 해야 할 지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상황”이라며 “경기도지사 공약사업으로 설치만 해놓고 관리를 전혀 안 하는 것이 안타깝다. 일괄 수거가 시급하다”고 했다.
한편 2014년 도내 자살 노인 742명 가운데 84명(11%)이 농약으로 자살한 것으로 집계됐다.
조철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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