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국장’은 ‘경제국’ 책임자다. 정조대왕능행차는 ‘문화국’ 소관이다. 굳이 따지면 행사와 무관하다. 그런데도 8일 새벽 5시 서울로 올라갔다. 배정된 역할을 찾아서 옷을 받아 입고 행렬에 참가했다. 창덕궁에서 노들섬까지 10.39㎞를 걸었다. 수원 공무원인 그가 서울 구간에 참가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조의 본고장 수원 공무원으로서 자부심 때문이었을 것이고, 모처럼 참가해준 서울시를 돕겠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도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까 공무원들이 욕을 먹는 거야.” ‘이 국장’이 된 소리를 쏟아냈다. 노들섬에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오르면서도 화를 삭이지 못했다. “모자를 달라고 했는데 3시간 만에 주더라고. 사전에 작은 옷을 주문했는데, 큰 옷을 주고는 그냥 입고 가래. 의궤에 내 역할은 칼을 차게 돼 있는데 곤장을 주는 거야. 답답해서 서울시 공무원을 찾았는데 끝까지 안 나타나더라고. 참가자들도 그냥 돈 벌러 나온 거야. 역사고 뭐고 계좌번호 적느라고 정신들 없어. 시민들은 차 막힌다며 삿대질하질 않나.” 어지간히 실망스러웠던 모양이다. “수원이었으면 동(洞)이 주관해도 이것보단 낫겠다.” ▶하루 뒤, 수원구간이 재현됐다. 도로는 완전히 통제됐다. 운전자들은 스스로 우회하며 길을 내줬다. 도로 양옆 인도는 수만명의 시민으로 채워졌다. 한 사람도 도로 위로 내려오지 않았다. 정조대왕 행렬의 완판(完板)이 그 위를 지났다. 장안문부터는 시민행렬이 뒤를 이었다. 등(燈)을 든 시민들이 질서 있게 행렬을 따랐다. 행사 예산을 돕기 위해 각자 구입한 등이었다. 2천명의 참가자도, 수만명의 시민들도 수원구간에서는 모두가 연기자였다.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이 그렇게 끝났다. 221년 만에 가장 원형에 가깝게 재현됐다. 서울시, 안양시, 의왕시의 동참이 있어서 가능했다. 특히 서울시의 참여는 의미 깊다.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된 최초의 능행차였다. 한강 위에 배다리가 설치된 최초의 능행차였다. 그런데도 수원 공무원 ‘이 국장’ 에겐 어지간히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서울시의 성의 부족이 못마땅했고, 서울시민의 참여 부족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랬다. 첫째 날 서울 구간 재현과 둘째 날 수원구간 재현은 달랐다. 완성도에서 달랐고 시민정신에서 달랐다. ▶그래도 마무리 평은 후했다. “우리(수원시)는 50년을 했잖아. 서울시는 처음이라 그럴 거야. 그래도 서울시가 참여해서 행사가 커졌는데. 내년엔 나아지겠지.” 정조대왕 행정 50년 수원시. 그 수원시의 공무원 ‘이 국장’의 서울 능행차 참여기는 이렇게 넉넉하게 끝났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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