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12시간 동안 지난 1년 동안 진행해 온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정신없이 바쁜 학술대회 기간 중, 일요일 오전 7~8시 사이에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한 3㎞ㆍ5㎞달리기ㆍ걷기 행사가 함께 열린다.
이 기부금 조성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개인이나 제약 기업의 단체 참가자는 1인당 최소 참가비 50불을 내야 하지만 대부분의 참가자는 추가로 몇 십불씩의 기부금을 더 내고 행사에 참가한다. 필자는 2014년 56차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 미국의 독특한 연구 기부금 문화를 체험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함께 참가한 교수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달리기ㆍ걷기 행사에 참가했다.
당일 아침 7시부터 약 1천명 이상의 의사, 연구원, 제약기업의 직원들이 함께 어울려 1시간 동안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달리기를 마치고 결승점에 도착한 완주자에게는 행사를 후원한 수많은 제약회사의 로고가 찍힌 값싼 티셔츠 한 장이 완주 기념품으로 제공되었다.
행사가 끝난 후 대회 당일 미국혈액학회 홈페이지에 기부금 액수는 10만불 이상이었고 이 행사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 전액은 개발도상국의 백혈병 연구자들의 미국 내 연구소에서의 교육 연수 경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쓰인다는 내용이 게시되었다.
필자가 1997~1999년까지 백혈병을 연구한 미국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암 연구기관인 미국 시애틀의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의 설립은 시애틀 시민들이 폐암으로 사망한 시애틀 야구팀 투수 ‘프레드 허친슨’을 기억하며 암 퇴치를 위한 연구소의 설립을 추진하는 모금으로 시작되었고, 현재 사용되는 연구비의 상당수가 마이크로소프트, 보잉, 아마존 닷컴, 스타벅스 등 시애틀 기반의 기업들과 유명인, 시민들의 개인 기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미국의 기부 문화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특정 개인의 일회성 치료 비용으로 쓰이는 우리의 기부금과는 사뭇 다른, 근본적으로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대학이나 병원의 연구비로 주로 기부된다.
대학연구소 연구비의 대부분을 국가의 재정으로만 충당하는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나 차이가 있다. 최근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기업의 연구기부금과 사례금의 경계가 모호해진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건전한 기부 문화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 세계 최고의 의학연구 경쟁력을 유지하고 가난한 나라의 연구자까지도 지원하는 미국의 연구 환경이 새삼 부러울 뿐이다.
김동욱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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