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터뷰] 배기동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신임 이사장

사회지도층이여,...  박물관을 액세서리로...생각하지 마라!

“우리 사회 지도층이여! 박물관을 ‘액세서리’로 생각하지 마라!”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배기동 제5대 신임 이사장의 말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국립박물관 내 편의시설 운영과 관련 문화콘텐츠 개발 지원을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지난 8월 취임한 배기동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현재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으로 세계 고고학의 역사를 바꾼 전곡리 선사유적을 토대로 한 전곡선사박물관 초대 관장을 역임하는 등 우리나라 박물관계 주역이다. 그가 1시간 이상 진행한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취임 기념 인터뷰 끝에 강조한 것은 ‘박물관을 액세서리로 생각하지 마라’는 당부였다. 현실을 반영한 씁쓸한 당부인 동시에, 지도층을 향한 쓴소리로 국내 박물관계 새바람을 기대케 한다.

 

Q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사장 취임 소감은

A 국립박물관재단의 이사장직은 기관 명칭과 직함만으로도 큰 영광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순 없다. 그저 평생 박물관을 위해, 박물관에서 일해왔으니 평생 생각한 것을 마음껏 펼쳐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과 건강한 문화 형성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무엇을 하고 싶은가

A 사람들이 ‘박물관에 가면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화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어렵게 생각한다. 평생 한 번 가보면 된다고 여긴다. 박물관에 대한 마음의 벽, 장애를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박물관이 생활의 한 동선이 되도록 형성하는 것을 재단의 가장 큰 이념으로 세워야 한다고 본다. 국립박물관을 만날 다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국공립과 사립, 동네 박물관 등 여러 종류의 박물관이 있고 사회적 기능 역시 각각 조금씩 다르다. 여기서 국립박물관은 온 국민이 자랑해야 할 문화가 모여있는 곳으로 나라의 상징이다. 그만큼의 품위를 갖추고 여러 사람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와 기능 역시 강화해야 한다. 지역 박물관의 경우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지적인 자원이다. 생활의 시간적 여유를 보낼 수 있는 장소이자 친구가 되어 자기 계발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생산에 몰두했던 과거와는 다른 시대를 맞이했다.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런 점에서 여유시간을 활용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박물관은 그 모든 것의 플랫폼이자 특별한 문화를 생산하고 기획하는 기관으로 역할을 해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이나 국민의 생각 속에 이 같은 인식이 깊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Q 서울특별시는 박물관 100개 시대를, 경기도는 공공박물관ㆍ미술관의 민영화를 각각 이야기하면서 기대와 우려를 샀다. 진짜 우리나라 박물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보는가

A 부자인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박물관을 어떻게 설정하고 쓰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행복지수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박물관이 있지만, 정말 우리의 박물관이 ‘지적정보의 원천’으로 기능하냐고 물었을 때에는 금세 대답 못한다.

현재 박물관에 필요한 것은 교통, 인터넷 규모와 속도가 완전히 바뀐 글로벌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개인과 내 동네에서 나아가 전 세계 정보를 알아야만 살 수 있는 시대다. 글로벌 사회에서는 지적 정보, 네트워크 구축, 다문화 등 학교 교육이 소화할 수 없는 전 세계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창의력이 뛰어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문화 자산이 풍부한 나라들은 그것을 토대로 새롭고 창의성이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냈다. 박물관은 그 다양성을 보여주고 이해시켜주는 곳으로 최적화된 공간이다. 우리나라 박물관은 오랫동안 ‘발전 단계’다. 정부가 박물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그 단계에서 탈출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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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각각의 박물관 건립 및 운영 시 주안점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A 박물관을 ‘고급 액세서리’로 여기는 것을 버리고 콘텐츠를 생각해야 한다. 경기도는 수년째 소장품 수집을 하지 않고 있다. 소장품, 콘텐츠는 박물관의 기초다. 최근 박물관에서의 체험 교육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 역시 좋은 유물(소장품)을 토대로 실제 체험할 수 있어야 효과적이다. 아이들 1천명이 박물관에 와서 놀면 뭐하나. 놀이터와 다를 바 없다. 유물 체험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

이 때 컬렉션은 박물관 성격을 규정하고 질을 구분한다. 경기도의 전곡선사박물관처럼 좋은 유적이 많이 있는 장소에 자리잡는 것 역시, 컬쳐이모션(문화감성)을 짙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고향의 초가집이 정겹고 의미있는 것처럼 좋은 장소에서 그 오브제(사물)의 가치가 달라진다. 경기도에는 고유의 것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책적 방향을 대중성만 강조하면 박물관은 견디기 힘들다.

 

Q 경기도 고유의 것 만들기, 박물관 정책에 대해 좀 더 제안해달라

A 예전과 달리 박물관은 폭넓은 장소성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복잡해졌다. 유물은 유한하지만 박물관에 대한 수요는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하는 축제나 장소의 가치 등을 갖춘 박물관이 요구되고 등장할 것이다.

경기도는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조선왕조 신개념 계획도시로 크게 보지만, 개인적으로 ‘DMZ’가 더 큰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DMZ는 인류 지성사의 단층이다. 인류 지성사의 한 현장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성장하고 확산되면서 부딪혀 새롭게 형성되고 고착화된 곳이 이곳이다. 세계 그 어느 곳에도 없다. 단순히 생태적인 것을 보존 수집하는 것을 목표로 해선 안 된다. 정치가, 행정가, 사상가, 고고학자, 생태학자 모두 모여 어떻게 세계적 명소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지붕없는 박물관으로서 인류사의 격렬한 생각이 글로벌하게 부딪혀 남은 상처인 DMZ의 가치를 키워야 한다.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 전 세계 시인을 불러 DMZ의 가치를 시로 읊게 하라. 전 세계 사상가들을 모아 고민하게 만들고 그 이상의 가치를 규정해보자. 통일시대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가치를 정확히 알고, 이 작업을 하는 경기도지사야말로 대권주자가 아니겠는가.

 

Q DMZ에 대한 가치 규정이 놀랍다. 광역과 기초지자체 가릴 것 없이 정권 교체 시 박물관ㆍ미술관 숫자만 늘리고 어느 순간 골칫덩어리로 여기는 지도층을 자극할 만하다

A 박물관은 모든 이의 학교다. 놀이터이고 배움터이다. 흔히 박물관을 정치인들이 전략적 제스처(몸짓)로 만들고 박물관답지 않다고 비판하는데, 박물관처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 세우고 수위만 갖다 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공립 박물관ㆍ미술관 부실 원인이 그것이다. 지속가능하도록 운영 계획과 적절한 인력 투입을 고민해야 한다.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공공기관이다. 공적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다. 직업과 다문화 등 박물관의 교육 역할은 더 늘어날텐데, 지도층이 정확히 인식해서 새로운 박물관 시대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류설아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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