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화성재인청 예술의 부활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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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전통공연예술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재인(才人)이었다. 재인은 광대(廣大), 창우(倡優), 화랭이, 산이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이들은 조선조 말까지 직업적인 민간 예능인의 연예활동을 행정적으로 관장하던 기구였던 재인청(才人廳)에 속하여 공연예술 활동을 하였다.

재인청은 주로 경기, 충청, 전라도에 있었으며 수원에도 경기 지방을 대표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화성재인청이 있었다.

 

화성재인청이 수용하고 있던 예능의 기능은 전통 무형문화 유산인 음악, 무용, 연희(演), 놀이, 의식, 무예 등 가(歌)·무(舞)·악(樂)의 다양한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조선조 정조시대의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 속에 화성행궁 낙남헌(洛南)에서 펼쳐진 ‘낙성연도(落成宴圖)’에는 수원화성에서 펼쳐진 지배계층을 수용층(受容層)으로 하는 궁중정재(宮中呈才)와 기층민(基層民)을 수용층으로 하는 가(歌)·무(舞)·악(樂)이 융합된 민간 연희의 다양한 장면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적 변화에 따라 문화적 가치가 변용되었으나, 그 문화 내용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축적하여 온 다양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화성재인청이 지니는 문화적·역사적 가치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화적 보고(寶庫)라 할 것이다. 따라서 화성재인청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유산의 보고이자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기에 주목해야 한다.

 

조선조가 멸망하고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일제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화성재인청도 자연스럽게 붕괴되었다. 화성재인청의 붕괴에 따라 그 조직과 기능이 인멸되어 현대사회에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문화기반을 잃고 있음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문화유산의 복원은 유형과 무형이 함께 복원되어야만 온전한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유산인 수원화성은 복원되었는데 무형의 문화유산이 함께 복원되지 못했다. 화성재인청의 복원이 이루어져야 수원화성의 온전한 복원도 그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2004년에 수원에 화성재인청복원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바 있으며,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2006년까지 3개년에 걸쳐 ‘화성재인청’과 그 예술의 보존·전승을 위한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화성재인청’ 복원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나 더 이상 확산 발전되지 못했던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중차대한 사업의 구체적인 결실을 위하여서는 화성재인청 복원과 연관된 전문적인 학자들과 전통예술가들이 공동의 장을 마련하여 체계적이고 완벽한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화성재인청 의 복원과 예술의 보존·전승을 위한 공동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앞으로 수원시는 화성재인청 복원의 실현을 통하여 수원시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전통적 문화도시 수원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부여함은 물론, 경기도의 중심도시로서 수원시에 꽃 피었던 화성재인청의 전통예술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전통문화도시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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