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과잉 해석에 ‘상처받는 동심’

선생님에 음료수도 못건네고 생일파티까지 취소
어린이집·학교들 운동회·체험학습 앞두고 골머리

제목 없음-1 사본.jpg
“공정한 사회 구현도 좋지만 멍든 동심은 누가 책임져 줍니까”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 다니는 네 살배기 건형이(가명)는 앞으로 생일잔치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매달 한 번씩 하는 생일잔치에는 좋아하는 터닝메카드 케이크나 타요 케이크에 초를 꼽아놓고 친구들과 모여 불도 끄고, 과자와 주스도 함께 나눠 먹으며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주기에,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건형이에게 생일잔치는 일종의 파티였다. 입을 크게 벌리고 활짝 웃으며 사진도 찍고, 집에서 가져온 선물도 친구에게 주는 파티였다. 그 동심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올해 여섯 살인 지은이(가명)는 얼마 전 어린이집 소풍을 갔다가 서러움에 복받쳐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평소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담임 선생님께 음료수 한 캔을 건넸다가, 선생님이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자 서운한 감정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지은이 어머니 A씨(40·안양 만안구)는 “아이가 소풍 가서 좋아하는 선생님께 드릴 음료수를 사달라고 며칠 동안 졸랐다”면서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으로 아이가 선생님에게 음료수 하나도 주지 못하니, 세상이 너무 각박하게 변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품 수수나 부정청탁이 근절되는 등 투명한 사회 구현을 위해 시행된 일명 김영란 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 등에 관한 법률)이 아이들의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그동안 소풍이면 학부모들이 싸주던 김밥과 음료수 등을 받고, 생일날이면 의례 하던 잔치가 정으로 통용됐지만, 이제는 금품수수라는 이름으로 낙인 찍힐까 교사들이 잔뜩 움츠러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법 시행 취지엔 동의하지만, 아이들의 동심까지 파괴하는 등 너무 각박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교사와 학생·학부모 사이에 작은 간식이라도 건네는 것은 금품수수에 해당, 위법이 된다. 또 어린이집 생일잔치에서 학부모가 가지고 온 케이크나 간식 등을 아이들끼리 먹는 건 관계 없지만, 이를 교사가 먹는다면 이 또한 위법 사항에 해당한다.

 

이 같은 법 조항이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일선 학교 현장에도 적용되면서 운동회나 체험학습을 앞둔 교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여교사 B씨는 “얼마 전 체험학습을 앞두고 가슴을 졸여야 했다”면서 “혹시 아이들이 과자라도 건네면 계속 거절해야 하는 탓에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면 어쩌나 싶어 며칠째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라고 답답해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과잉해석된 것이라며 교사들에게 판단의 여지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희숙 유아교육학 박사는 “교사에게 특별히 잘 보이기 위해 전하는 것들은 지양해야 하지만, 무조건 교사한테는 아무것도 줘서는 안 된다는 건 과잉해석처럼 보인다”며 “아이들이 먹는 것 등을 교사와 나누는 걸 금지하기보다는 교사가 교육적으로 적절히 판단 할 수 있는 여지를 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지금은 법 시행 초기라 기존 관행과 맞지 않는 부분에서 국민이 혼란스럽게 느끼고 있지만, 점차 법이 자리를 잡아가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연선유선엽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