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책임도 없고, 사표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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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31일 오전 7시 21분, 129명의 승객을 태우고 하네다 공항을 이륙하여 후쿠오카로 향하던 보잉 727 일본항공(JAL) ‘요도호(ょピ)’는 승객을 가장한 ‘적군파(赤軍派)’ 7명에 의해 납치되었다. 납치범들은 권총으로 조종사를 위협, 북한의 평양으로 갈 것을 강요했다.

 

조종사는 우리의 김포공항에 착륙하면서 마치 평양공항에 도착한 것처럼 작전을 꾸몄다. 김포공항측도 그렇게 위장전술을 폈으나 ‘적군파’들은 곧 눈치를 채고 평양으로 가지 않으면 승객을 차례로 죽이겠다고 날뛰었다.

 

이때 나타난 것이 일본 운수성(교통부) 정무차관 야마무라 신지로. 그는 대담하게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였다. 그래도 대화에 진전이 없자 정무차관은 “내가 인질이 될테니 승객들을 풀어 달라”고 비장한 제안을 했다. 납치범들은 예상치 못한 ‘인질 자청’에 어쩔 수 없이 승객들을 풀어주고 정무차관만 인질로 잡은 채 김포공항을 이륙, 북으로 향했다.

 

이 뉴스는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자신의 몸을 던져 자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공직자의 자세가 그만큼 감동적이었던 것.

 

우리나라에도 최근 이처럼 자신의 몸을 던져 인명을 구한 교사가 있어 큰 감동을 주었다. 강원도 동해 묵호고 A교사. 교사생활 2년차의 젊은 A교사는 지난 15일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화재 참사 당시 불길 속에서도 자신의 승용차에 부상자 4명을 태워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해주었다.

 

당연히 그에게는 ‘의인’의 칭호와 함께 5천만원의 상금이 전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A교사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상금을 거절했다. 5천만원이라면 학교 선생님으로서는 큰 돈이 아닐 수 없는데도 그는 극구 사양했다.

뿐만아니라 많은 언론기관에서 그의 선행 소식에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이 역시 거절했다. 학생들의 수업을 빼먹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교사가 있어 그래도 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구나 하는 감동을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들에게서는 눈을 부비고 귀를 기울여도 이런 감동적인 뉴스는 전해오지 않는다. 누가 책임을 지고 몸을 던졌다든지 사표를 냈다는 뉴스도 없다.

 

국민안전처는 7월 5일 밤 8시 33분 울산 앞바다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17분이 지나서야 ‘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그나마 날짜를 잘못 표기해 6분 뒤 수정문자를 발송해야 했다. 9월 12일 밤 지진에서도 긴급 재난문자는 지진발생 10분이 지나서야 늑장 발송됐다.

 

일본의 경우 지진이 발생하기 전 긴급 재난문자가 먼저 발송되거나 최소한 3초를 넘기지 않는데,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이 때문에 겪어야 했던 국민들의 혼란과 피해는 또 어떠했는가? 그래도 관계관 하나 책임지고 사표를 던졌다든지, 문책을 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다.

 

물류대란을 일으키고 수출에 막대한 피해를 준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서도 책임지고 물러나는 장차관 하나 없다. 생각해보자. 수출품과 화물을 실은 50여척의 배가 항구에 입항을 못하고 한량없이 공해 상에 떠있어야 하는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몸을 던져 뛰어들 장차관이 있었던가.

 

경제상황의 악화, 노사문제…. 하지만 책임도 안지고, 사표도 안쓰는 우리 공직 풍토가 만성화 되어가기에 새삼 스스로 ‘나를 인질로 잡으라’며 납치범들에게 몸을 던진 ‘요도호 사건’의 야마무라 신지로 일본 운수성 정무차관, 그리고 불길 속에 인명을 구하고도 상금을 거절한 묵호의 젊은 교사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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