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지역의 역동성과 잠재성 주혁 한양대 교수
“통일시대 이끌 미래 국가동력, 경기북부 개발 속력내야”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의 군웅할거의 현장과 고려 현종대 제도로서 설정된 ‘경기’의 변화가 옛날 이야기라면, 분단의 현장과 통일로 가는 길목은 2000년대를 사는 우리 삶의 한 가운데에 진행 중인 사안이다.
여기에 분단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경기북부 주민들의 극심한 ‘개발 소외감과 박탈감’에 이르면 체감지수가 그 정점에 달한다.
서울시의 경우 1970년 강남개발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한강 위쪽 즉 강북이 서울의 중심이었던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강남이 개발, 확대되면서 강북과 강남 사이에는 부의 편차와 함께 정서적 구분이 그어져 있다.
이를 경기도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경기북부 주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소외감은 그 강도가 더 깊고 넓다고 보인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듯이 경기북부의 역동성과 잠재성은 1천년 역사의 변화과정에서 이미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북 사이의 긴장감은 여전하지만, 다행인지 경기북부의 경우 50년 넘게 똬리를 틀고 있던 주한미군이 속속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속도는 느리지만 각종 개발제한조치도 현실적인 사정을 감안하는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 분단의 아픔은 치유하고 포용할 문제이고 통일로 가는 길목은 이념형으로 그칠 구호가 아니라 하나하나 구체적인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반드시 우리 눈앞에 닥칠 통일에 대비하여 총론과 각론을 구비한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시점이다. 분단과 통일의 구체적인 현장인 ‘경기북부’의 청사진은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22세기를 살아갈 후세들에게 ‘문화와 역사 향기가 가득한 질적 삶의 조건과 상황’을 물려준다는 시각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獨 흡수통일 거울 삼아… 꾸준한 감정적·물적 교류 필요”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중심축의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이 본격화되기 이전 동서독은 자매결연을 통한 연방간 교류를 통해 양국은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서로 탄탄한 신뢰를 쌓았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방간의 교류는 통일 이후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는데 bottom-up 형식의 통일 준비는 여러모로 유용하였다. 중앙정부가 주로 주도하였던 통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고 물론 한국과는 지방자치단체의 의미와 체제가 상이하지만 통일 이후 국가를 재구조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물론 독일 연방제를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와 등치시켜 생각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의 과정에서 경험이 부족하였던 동독에 전폭적인 행정지원, 서독의 지원을 중심으로 한 행정인프라의 물적 인적 장비 구축은 동독의 주민들, 나아가 동독 지역의 연방이 재도약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을 상기하여야 한다.
이는 통일전부터 꾸준한 교류를 통해 각 지역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에 전제한다. 이같은 지자체 차원의 노력은 독일이 복지제도의 통합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통일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한 복지통합’ 이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통일의 완성은 복지통합으로 귀결된다.
이제는 중앙정부가 모든 국민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를 위해 지자체 차원의 감정적, 물적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 연이은 북한의 핵실험이 이어지고 힘찬 포부로 시작했던 개성공단이 중단된 지금, 우리는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기도는 위치상, 기능상 통일 시대의 주역으로 기능할 대표적 지자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에도 경기도가 해야 할 일은 실로 막중하다.
“분단의 현장 DMZ, 전 인류가 공감 ‘세계문화유산’ 만들자”
분단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은 역사의 증거이며 인류 서사의 한 고리이다. 연결-죽음-소통으로의 전환이 간절하다. 그래야만 죽음도 가치있는 희생으로 남겨질 것이다.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고, 우리만의 분단이 아니라 전 인류가 관여해 20세기를 농축한 장소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DMZ 일원의 분단유산들은 우리의 삶을 명백히 증명하고 아픈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현장이다. 인류의 20세기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로의 가치 상승도 가능하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대결현장, 좌와 우의 사상논쟁의 현장, 서구와 동구의 가치들로 인해 쇄락했던 동방의 가치가 묻힌 현장. 그 거대하지만 실패를 거듭했던 인간정신의 한 결과물로 다시 해석되어 재현된다면 기꺼이 ‘세계문화유산’이 될 것이다.
DMZ과 DMZ 인근의 분단유산은 인간 정신의 융기 현장이다. DMZ으로 집중된 세계의 분쟁이 다시 여기로부터 평화의 이데올로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분단유산의 반전을 생각해볼 때다.
분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주었고 또 이야기를 만들었다. 동두천을 배경으로 한 김명인의 시 ‘동두천’과 오영수의 단편 ‘안나의 유서’, 용주골이 배경인 천승세의 단편 ‘황구의 비명’ 등 많은 시와 소설이 기지촌 이야기를 담아냈다.
소설가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 직업인 사람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구호를 만들어 내어 분단을 치장하면 되겠지만, 진실로 통일이 꿈인 사람은 끊임없이 분단된 상처를 쥐어뜯어 괴롭게 피 흘리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지촌 문학을 읽는 일은 괴롭게 피 흘리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스란히 후대에게 전해져야 하는 기억유산이고 문화유산이다. 경기도 양평의 황순원 문학관이 좋은 본보기다.
분단이 남긴 문화유산들도 옛길을 복원하듯이 그 연장선상에 놓여 새 길을 찾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점점이 하나씩 비극의 현장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잇는 서사의 한 줄기로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야 분단 극복의 기재,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물로 자리잡을 것이다. 동북아 물류 중심, 시베리아횡단철도와의 연결, 대륙을 향한 출발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경기도의 몫이다.
“김포 평화문화도시 등 미래세대 위한 아이디어 모아야”
경기도는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새로운 경기의 문화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여 유엔과 유네스코에 의해 진행된 평화문화 캠페인과 지자체 차원에서 평화문화도시를 추진하는 김포시의 사례를 통해 경기도에서도 평화 지향적 문화 컨텐츠를 발굴할 아이디어를 구하면 어떨까?
1997년 유엔총회에서는 2000년을 ‘세계평화문화의 해’로 선포했다. 평화문화에 대한 비전은 차별이나 편견 없이 모든 사람의 존엄성, 인권, 생명존중,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증진함, 모든 사람의 표현ㆍ의사ㆍ정보의 자유 인정, 그룹ㆍ개인 간의 자유, 민주주의, 관용, 문화적 다양성, 대화 등과 다음과 같은 가치, 태도, 전통, 사고와 행동양식을 반성하고 고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김포는 2015년부터 평화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포는 수도 서울과 접하고 한강을 통해 북한과 접해있는 유일한 곳이다. 매년 연말이면 애기봉에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점화하는 문제로 북한에서 선제타격을 하겠다는 불안감이 조성되는 분단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에 김포시는 남북분단과 갈등, 불안의 도시가 아닌 평화와 통일을 준비하는 도시로 거듭날 것을 준비하여 적극적 평화와 인간안보에 기초한 ‘김포 평화문화도시 선언문’과 ‘김포 평화문화 헌장’을 발표했다.
또 도시 발전전략 차원에서 평화문화도시 추진체계를 수립하여 △평화문화지향 공감대 향상 △평화통일 상징기반 조성 및 위상제고 △평화문화협력 네트워크 구성 등 세 가지 중점 과제를 설정하여 향후 다양한 평화문화 컨텐츠를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특별히 시민들의 평화인식을 확산하고 평화감수성을 형성하기 위한 평화교육을 활성화하고 있다.
김포 평화문화도시 조성사업은 경기도 전체로 확장, 적용될 수 있는 긍정적 사례다. 특별히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여 경기도의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을 마련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전략을 구상함에 있어 경기도의 문화역량을 모아 분단의 아픈 유산을 미래의 후손을 위한 평화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추진하기 바란다.
그것이 경기천년을 기념하는 경기도민들이 지금 여기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가장 적극적인 평화 만들기가 아닐까.
정리=권소영 손의연기자
사진=전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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