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봄과 가을에 떠나는 소풍은 늘 설레고 즐겁기만 했다. 매년 단골 소풍 코스인 학교 인근의 백월산(白月山)으로 떠나는 소풍이기에 다를 것도 없지만, 유난히 가을소풍이 좋았던 것은 아마도 풍성한 먹거리 때문이었다. 봄소풍엔 요즘처럼 흔한 소시지도 안 들어간 단무지와 지단이 고작인 김밥 또는 계란 후라이가 곁들여진 도시락에 탄산 음료수 한 병이 전부다.
그러나, 이처럼 단출한 봄소풍에 비해 가을소풍에는 도시락과 탄산음료 외에도 단감과 삶은 밤ㆍ계란 등이 추가돼 작은 배낭에 먹을 것이 가득했다. 또한 소풍날에는 담임 선생님께도 음료수와 먹거리를 담은 봉투 하나가 건네진다.
여자 담임 선생님의 경우에는 스타킹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는 ‘평소 어린 자식을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다’는 부모님의 마음이 담긴 소박한 선물인 것이다. 이처럼 풍성한 먹거리와 보물찾기, 장기자랑 등에 추억을 남기는 사진 한 컷까지 어린시절 가을소풍은 반백(半百)을 넘어선 지금까지도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들에겐 일 년 중 유난히도 소풍날이 기다려지고, 소풍가기 전날엔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행여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날 밤은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마 전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 살 딸아이가 소풍 가는 며칠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들어가고, 전날에는 설렘에 쉽게 잠 못 드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적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딸아이의 가을소풍날 달라진 세태로 인해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지난 2년 동안의 어린이집 소풍 때와 올해 봄소풍까지 아이의 손에 쥐어졌던 선생님용 음료수가 빠졌기 때문이다.
이미 가정통신문을 통해 ‘선생님을 위한 도시락이나 음료수 등의 제공을 사양한다’는 소식을 접한 터라 관례대로 해오던 음료수를 준비하지 않았다.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이를 알리 없는 아이는 울며 불며 선생님 음료수를 사 오라고 떼를 썼고, 아내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해했다. 결국 ‘선생님이 가져오지 말라고 전화를 했다’면서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 소풍을 보냈지만, 전날까지 설렘으로 가득했던 아이가 시무룩이 소풍을 떠나고 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 역시 씁쓸하기만 했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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