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정도전이 고려말 원나라 사신의 영접을 거부한 죄로 전라도 나주에 있는 회진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였다.
하루는 들녘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밭일을 하는 농부와 말을 건너게 되었다. 그 농부는 정도전을 알아보고 ‘힘이 부족함을 헤아리지 않고 큰 소리치기를 좋아한다’고 충고를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농부로 태어나 밭을 갈고, 국가에 세금을 내며 처자를 부양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인데 당신들은 백성의 배고픔과 고통을 돌보지 않는다’고 나무랐다.
그 순간 정도전은 머리에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깊은 산골에 사는 어리석어 보이는 백성도 정치가 왜 잘못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으며 그래서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국가와 사직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이 정도전 정치철학의 위대한 핵심인 ‘민본사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앙에서의 음흉한 권력투쟁, 음모, 부패, 분파 등등 아무리 치열해도 그것이 백성의 삶과 행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확신이야말로 그에게 일대 변화를 일으킨다.
농부가 충고해준 대로 ‘민본(民本)’은 힘이 있어야 함도 깨달은 것이다. 정도전은 바로 그 힘을 빌리기 위해 함경도 동북면에서 변방을 지키는 야전사령관으로 있던 이성계(李成桂)를 찾아갔다.
그는 이성계의 군대가 잘 훈련됐고 질서정연함을 보고 더욱 마음을 굳혀 엉망으로 추락한 고려왕조의 실상을 논하고 새 세상의 문을 열어야 함을 설파해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는 이성계의 힘을 빌려 조선왕조를 세웠고 미래를 향한 개혁을 이루어 나갔다. 이와 같은 정치공학적 상황을 정도전은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해 중원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고조를 이용했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감추어진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나라를 들끓게 하고 있는 이른바 최순실 사건도 대통령의 힘을 빌려 나라를 통치하려고 했던 것일까?
정도전이 그 힘을 빌리기 위해 이성계를 찾아가고 권력의 로드맵을 만들어 준 것과 아버지 최태민 목사로부터 딸 최순실까지 박 대통령을 찾아간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정도전은 임금의 힘을 ‘민본’에 썼고 최순실은 자신과 딸을 위해 휘둘렀다. 정도전은 나라를 개혁하는 데 ‘대권’을 차용했고 최순실은 사적 욕심을 채우는 데 대권을 악용했다.
하지만 조선왕조를 세우고 이끌던 정도전이었지만 역시 그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세도가들이 사병(士兵)을 거느리고 있어 걸핏하면 국기를 문란 시키는 것을 개혁하려고 하자 왕자 이방원(훗날 태종)의 저항에 부딪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398년 8월 세자를 책봉하는데도 정도전이 자신을 밀지 않고 이복동생 방석을 세우려는 데 앙심을 품은 이방원에 의해 이른바 ‘왕자의 난’에서 제거당하고 만다.
지금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게이트’로 매우 험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박대통령 자신이 이미 600여 년 전 정도전이 온몸을 던져 터득한 ‘백성이 주인이고 국가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사직과 국가가 물거품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민의 마음에서 떠나버린 박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또 어떻게 얻어야 할지? 이런 질문마저 박대통령은 최순실에게 묻지 말고 상처 입은 국민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