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단상] 파주는 왜 율곡인가

‘궁하면 변화되고, 변하면 통한다’ 궁즉변(窮卽變), 변즉통(變卽通). 450년 전 율곡(1536~1584)이 선조에게 진언한 주역의 한 구절이다. 개국 후 200년이 지난 당시 조선은 경장(更張)이 필요했다. 

건국초기 치세를 지나, 각종 사화를 거치면서 지식계급은 무너지고, 정치·경제, 사회·국방에서 폐단이 생기고, 민생은 어려움에 빠졌다. 내란과 재정고갈, 군정문란, 관료부패 등 나라정세가 한나절도 버티기 힘든 건물에 비유될 정도였다.

 

이를 간파한 율곡은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릇된 법규를 서둘러 개혁해야 한다고 청했다. 능력 있는 사람을 임용하고 군사를 양성해야 하며, 재정은 넉넉히, 변방을 굳건히 하자고 했다.

하지만, 율곡의 주장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율곡이 죽고 8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누구보다도 국가 존망의 위기를 절감하고, 현실을 직시한 율곡이 개혁의 정당성과 절박함을 일깨우려고 애쓴 흔적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파주가 율곡이이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농복합도시 파주는 LG디스플레이와 운정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로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다. 롤러코스터 같은 변화 속에서 제대로 중심을 잡고 나가기 위해 현실직시와 미래를 예측하는 율곡이이의 ‘직관력과 개혁정신’이 필요했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경세가요, 교육자이자, 성리학자로서 기호학과 실학의 근본이 된 율곡이이는 자운서원(紫雲書院, 파주시 법원읍)에 잠들어 계신다.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부인과 함께 가족묘에 모셔 있다. 자운서원에서 올해 29회째 ‘율곡문화제’가 열렸다. 율곡이이 유적이 국가 사적으로 승격되고, 파주는 율곡문화제의 격을 한층 높였다.

 

신사임당은 친정인 강릉에서 율곡을 낳았고, 율곡은 여섯 살까지 강릉에서 지냈다. 이후, 파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키웠다. 강릉은 율곡의 외가이고, 파주는 율곡의 친가인 셈이다. 올해 율곡문화제에서 파주시와 강릉시는 상생협력을 위한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남다른 총명함과 학문적 두각을 보인 율곡은 여덟 살에 화석정(花石亭, 파주 율곡리 소재) 팔세부시를 남겼다. 한 번도 어려운 장원을 아홉 번씩이나 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린다. 이이의 호(號) ‘율곡(栗谷)’도 밤나무가 많은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율곡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파주는 율곡브랜드 구축을 위해 문화관광, 교육행정 분야를 총망라했다. 율곡 이이와 함께 파주에서 성리학의 꽃을 피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선생이 교감을 나눈 편지글 모음집인 ‘삼현수간(三賢手簡)’도 펴냈다. 

세 분의 인간애와 우정을 기려 ‘뜻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 쉬는 곳’이라는 ‘지우정(知遇停)’도 율곡수목원에 세웠다. 율곡수목원은 율곡리 10만평 일대에 조성 중이다. 유아 숲 높이터와 구도장원길, 생태학습장도 만들었다. 수험생을 위한 ‘구도장원길 걷기행사’를 통해, 율곡의 총명함과 도전 정신을 체험할 수 있다.

 

37번 국도변에 시원스레 펼쳐진 율곡습지에서는 매년 코스모스 축제가 열린다. 습지와 임진강 철책으로 이어지는 생태탐방로도 반세기만에 문을 열었다. 철조망을 따라 걷다보면 분단조국의 애틋한 현실이 눈앞에 다가선다. 율곡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것도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동안 GTX와 지하철3호선 파주연장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파주의 뿌리 깊은 전통 문화를 지탱해주는 힘이 실로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파주는 율곡을 필두로 기호유학의 산실로써 가치를 높여갈 계획이다. 율곡이 말한 ‘크게 혁신하는 길이고, 크게 유익한 방법’을 찾는 일이다.

 

율곡이이 선생의 ‘혁신사상과 합리적인 개혁 정신’을 행정에 녹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훌륭한 유산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기회를 알고, 가치를 더해야 더욱 빛이 난다. 경세가 율곡의 본향인 파주시가 나가야 할 지향점이다.

 

이재홍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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