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이끌 전진기지… 역사 되짚고 미래 엿보다
지금 한국은 4차 산업혁명으로 유발된 네 번째 문명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학자, 학생 등으로 구성된 ‘경기천년 문명 탐사단’은 지난 7~8일 1차 문명 탐사에 이어 17~18일 2차 문명 탐사를 진행했다. 문명 전환이 이뤄졌던 현장에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분석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현장을 살펴본다.
■ 한글 창제로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세종대왕이 묻힌 여주 영릉
“세종 대 한글 창제, 과학 발달은 애민정신과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던 것이 바탕이다.”
지난 17일 오전 경기천년 문명 탐사단 2차 탐사의 첫 방문지는 경기도 여주의 영릉이다. 탐사 안내를 맡은 조성문 세종집현전 대표는 우리 역사 속 세종이 이룬 업적의 의미를 되새겼다.
탐사단은 붉은 홍살문을 지나 신도(혼령이 출입하는 신성한 길)를 피해 능으로 향했다. 영릉을 본 일행들은 ‘소박한 무덤이 세종답다’고 입을 모았다.
한자를 사용하던 조선은 세종 대 한글 창제로 인해 큰 변화를 맞이한다. 또 한글 창제는 한민족이 동아시아문명권 내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세종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인 과학기술의 발달도 이러한 이유다. 자격루(물시계), 측우기 등 천문학과 기상학이 크게 발전한 것은 왕권확립을 위한 정치적 이유와 함께 농사일에 필요하기 때문인 실용적인 이유가 꼽힌다.
이런 발전이 가능했던 것은 시대가 안정돼 있고 세종의 인문정신이 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마지막으로 “여주는 세종의 정신을 이어 인문 명품도시를 표방하고 있다”며 “향후 통일시대를 대비해 세종의 사람중심 사상을 오늘날 발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번 탐사에 참가한 윤영국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생은 “새로운 길을 연 한 분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에 와 좋은 경험이 됐다”며 “한글 창제가 여성이나 하층민이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데 감동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 서양문명 수용 과정을 볼 수 있는 실학박물관
두 번째 방문지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실학박물관이다.
탐사단은 정성희 실학박물관 책임학예사의 안내로 천문도와 천문관측기구,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 특별전 하피첩의 귀향을 둘러봤다. 조선 후기 중국ㆍ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서양문물 등에서 조선 실학의 형성과정을 살펴봤다.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후, 조선에도 변화의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 성리학자들은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일부 실학자들은 서양문명에 개방적인 입장을 취했다. 특히 경기도 내 지식인들은 다른 지역 학자들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그러나 18세기 실학자들에 의해 들어온 서학은 신앙으로 발전하며 박해를 받게 됐고, 결국 학문적 관심에서도 벗어났다. 이것이 한계가 돼 조선은 세계 정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앞서서 문명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정성희 실학박물관 책임학예사는 “18세기 한국은 소중화(小中華)의식으로 팽배해 다른 해외 정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제국주의가 들어오며 세계 정세에 대응하려 했지만 늦은 상태였다. 지금도 동아시아 정세에 외교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분석했다.
탐사단은 경기도의 미래 문명 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할 두 곳을 탐방했다. 먼저 방문한 경기도 평택항은 경기도 유일의 무역항으로 1986년 12월 제1종 지정항만 국제무역항으로 개항했다. 이곳은 서해안시대를 맞아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우리 무역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교역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배나영 안내원은 “평택항에는 435개의 산업단지가 인접해 있고 컨테이너 및 카페리 정기항로가 개설돼 있어 경쟁력이 있다”며 “평택항은 지난해 기준으로 화물처리량이 국내 5위, 자동차는 1위, 컨테이너는 4위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항구”라고 설명했다.
평택항은 국내 항구 중 TCR의 시작지점인 렌윈항과 가장 가까워 유럽과의 교역에 중요한 거점이 될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부 지역을 개발 중인 중국은 향후 시진핑의 일대일로 정책으로 중국횡단철도(TCR)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 화물을 유럽으로 보내는 데 소요되는 40일 정도의 기간을 TCR을 이용한다면 절반 이하로 단축시킬 수 있다.
문현주 카자흐스탄 국립대 교수는 “시진핑 일대일로 정책 영향권에 드는 나라가 65개국, 40억 명 이상이다”면서 “운임과 수송체계, 국가 간 관계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지만 장애 요인은 아니다. 10년 뒤를 내다보고 주변국에 관심을 가져 지금부터 협의와 교류 등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수원에 있는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다. 정보화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시대가 열렸다. 탐사단은 인공지능, IOT, 빅데이터 등이 떠오르는 가운데 경기도에서는 어떻게 미래 기술에 대비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융기원은 서울대학교의 교수와 연구진 등 인적, 지식 자원과 경기도의 건물, 예산 지원으로 운영되는 연구원으로 현재 융합기술 연구 뿐만 아니라 산학연 공동연구, 도내 대학생의 창업지원, 도내 중소기업 기술 컨설팅 등을 펼치고 있다.
또 도민을 대상으로 교양강좌, 교육기부 등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도 하고 있다. 향후 도내 산학기관, 중소기업과 연계를 강화해 경기도의 4차 문명 대비를 이끌어갈 계획이다.
이날 탐사단은 1인승 자율주행차 시승체험을 하고 인공지능 로봇을 직접 눈으로 보는 기회를 가졌다.
탐사단과 연구원 사이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으로 인한 미래 변화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도 오가기도 했다.
황금회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이 “드론을 보면 향후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의 미래양상을 알 수 있다”며 “당장 택배도 대체될 수 있는데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탐사단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견학했다. 융기원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은 미국 국방성이 주체한 세계재난로봇대회에서 12위로 입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모티브를 얻은 대회는 로봇이 재난안전임무를 얼마나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목적으로 로봇의 다양한 활용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김상현 융기원 디지털휴먼연구센터 연구원은 “지금 개발 중인 로봇은 기존 로봇을 개조한 것인데 허리 위치를 높게 둬 더 다양한 움직임을 의도했다”며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앞으로 로봇 관련 분야에서 연구원들이 역량을 발휘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강진갑 경기학회장
“새천년 이벤트로 인식 안돼… 장기적인 분석·예측해 선제적 대응”
경기 천년은 4차 문명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다. 앞서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살펴봤듯이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진갑 경기학회장은 경기도가 경기 천년을 4차 문명 전환과 연결시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어 강 회장은 시대에 맞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그중 대학과 도시 설계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 그는 “자율주행차 한 사례만 봐도 향후 주차공간, 아파트 부지, 도로 등의 구조가 바뀔 수 있다”면서 “장기적인 분석과 예측으로 정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당장 도가 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각계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이 경기 천년의 방향과 계획을 수립, 토론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것. 또 단순히 몇몇 전문가의 자문으로만은 경기 천년과 4차 문명의 변화를 풀어나갈 수 없다고 충고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탐사에 대해 “경기 천년을 맞아 과거 문명 전환지와 미래를 준비하는 장소들을 견학하고 나니 미래의 방향이 구체적으로 보인다”며 “새천년을 이벤트로 인식하면 안 된다. 한국 역사에 있어 네 번째 문명 전환인 것을 깨닫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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