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첫 머리에는 늘 홍성담이라는 작가가 있어요. 2014년 그와 시각매체연구회 작가들이 공동 창작한 걸개그림 <세월오월>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걸리지 못했어요.
감로도(甘露圖)나 괘불탱화 같은 불화(佛畵)는 법당이나 사찰에 거는 것이지만, 걸개그림은 마당에 거는 것이요, 광장에 거는 것이죠. 불화가 종교적 신심(信心)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그림이라면, 걸개그림은 민중의 해원과 공동체적 신명을 위해서 거는 그림이고요.
걸개그림은 그 시대와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아요. 처음엔 걸개그림도 감로도의 상중하단이라는 상징적 회화구성과 의미를 차용하기도 했으나, 점차 등장인물과 내용을 당대적 인물과 서사로 채워 새로운 민중적 감로도, 민중적 괘불탱화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세월오월>은 이 시대의 감로도예요. 아귀도에 빠져서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목련존자는 온갖 음식을 부처에게 공양했죠. 이로부터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음식공양의 절차를 그린 불화가 탄생했는데, 그것이 감로도예요.
“아귀도에 빠져서 먹지 못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어머니”는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해서 당도한 지금 여기의 민중적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광주 시민의 다양한 의견개진과 작가의 주장이 한데 어울려 있는 <세월오월>은 아귀도와 같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재구성했어요.
특히 이 그림은 감로도의 하단을 구성하는 아귀상, 지옥상, 윤회중생을 압축적으로 또 현대미술의 미학으로 재창조했죠.
야스쿠니의 망령에 홀린 일본 아베 총리에서 MB정부의 4대강 파괴, 촛불 어머니들, 5·18 영웅 혼령들의 밥 짓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 제주 강정, 김기춘 대원군과 박정희의 혼령을 뒤집어쓴 박근혜 대통령, 어버이연합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 초상 불태우기, 그리고 진도 팽목항의 슬픔까지 콜라주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그런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목련존자는 누구일까요? <세월오월>은 시민군 청년과 바리데기 처녀를 내세워요. 사천왕으로 묘사된 청년과 처녀는 음양을 이루며, 오행을 나타내는 오방색의 중심을 양분해 침몰한 세월호를 들어 올리고 있어요.
이처럼 ‘우물신화’에 바탕을 둔 그림은 대응과 저항의 실천 주체로 구성된 그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줘요. 세월호는 세월호만의 사건이 아니에요. 그것은 이미 밝혀지고 있듯이 숱한 한국사의 어두운 이면들이 얽히고설켜서 끝내 참혹한 침몰의 학살로 이어진 권력과 욕망과 망상의 실체죠.
우리는 그 실체의 낱낱을 규명하기 위한 시민투쟁에 나서야 해요. 그리고 그와 더불어 진심을 다해 소망해야 하는 것은 씻김과 해원의 마당굿이에요. 세월호의 아이들이 그림처럼 우물의 흰 빛으로 다시 태어나 은하수를 헤엄치는 미르가 되기 위해서라도.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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