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국악기는 진화해야 한다

200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10주년을 맞이하여 음악학자, 지휘자, 작곡자, 연주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학술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주제는 ‘국악 관현악 이대로 좋은가?’였다.

서양 교향악단을 모방한 국악기합주가 과연 우리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의 자리였다.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주로 전통악기에 대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관현악 합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악기개량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국악기의 특성에 기반 한 주요 질문들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악기는 같은 종류의 악기라 해도 음색이 각각 다르다. 국악기는 대체로 독주 악기로서 같은 종류의 악기라 할지라도 연주자 나름의 개성적인 음색(성음)이 있다. 그러나 관현악에서는 같은 악기끼리는 같은 음색을 낼 것을 요구한다.

 

둘째, 국악기는 악기에 따라 음량이 다르다. 선비가 방 안에서 조용히 연주하던 거문고와 농민들이 야외에서 농악(풍물)을 연주하던 태평소(새납)는 음량 차이가 크다. 그러나 관현악은 잘 어울리는 합주용 음량을 요구한다.

 

셋째, 국악기는 음정이 움직인다. 전통음악은 떨고, 흘려 내리고, 밀어 올리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소리를 살린다. 하지만 관현악은 변화 없이 쭉 뻗는 음을 요구한다.

 

넷째, 국악기는 반음진행이 어렵다. 국악기 구조상 잘게 쪼개는 반음진행은 어렵다. 하지만 관현악에서는 반음진행을 많이 요구한다.

 

다섯째, 국악기는 합주하기에는 음폭이 매우 좁다. 국악기 중 높은 음은 소금이, 낮은 음은 대아쟁이 맡는다. 대아쟁 보다 더 낮은 음을 내려면 더 긴 줄을 걸고 팽팽하게 당겨주어야 한다. 명주실 소재는 당기면 끊어지거나 꼬임이 풀어져 더 당길 수가 없다. 그런데 관현악에서는 대아쟁보다 더 낮은 음을 내는 ‘대대아쟁(?)’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국악기는 음정이 고정되어 있다. 이미 고정된 음높이로 민요를 연주하다가 조금 높게 또는 낮게 연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관현악에서는 다양한 음높이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악기를 개량하여 국악관현악 연주에 접목시켰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국악기는 앙상블 연주에 많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일본,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20세기 세계음악을 받아들이고 연주가 안 되는 악기는 개량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세계음악을 연주하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서양오케스트라는 앙상블 중심이고 우리 전통악기는 독주 악기이므로 태생부터가 다르다. 태생적 출발은 다르지만 이제 국악기는 전통음악 뿐 아니라 앙상블 음악 연주에 널리 쓰이고 있다. 국악기의 변신이 필요하다. 국악기 음역에 변화를 주는 것이 곧 우리 음악의 전통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국악기가 수 천 번의 변신을 한다고 할지라도 전통음악은 여전히 전통악기로 연주할 테니까 말이다.

 

다양한 세계음악 연주를 시도하며 우리 전통악기 개량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국악기(도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악기가 누구나, 어떤 음악에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악기로 변화하고, 음악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현시대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 깨질새라, 끊어질새라 조바심 내며 끌어안는 것만이 전통을 보존하는 길은 아니다. 

전통의 존속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현대적 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처럼 국악기의 음악적 유용성을 확장하는 가운데 대중적 음악생태계를 조성할 때 전통음악 역시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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