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의사와 국민건강보험제도 이야기

요즘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게 병·의원이고 주변이나 친인척 중에 의사가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의사가 많아진 세상이다. 1년에 3천 명이 넘는 의사가 배출되고 의사의 은퇴 시기도 늦어져 활동하는 의사의 절대적인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의사면허번호가 2만5천 번 대인데 올해 새로 의사면허를 받은 새내기 의사의 면허번호가 12만 2천 번 대라 하니, 필자가 의사면허를 받은 1983년도와 비교하면 그 간 10만여 명의 의사가 증가한 셈이다.

 

의사의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의사들 밥이나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필자가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던 1977년도에도 의사들끼리 모이면 앞으로는 의사가 남아돌아서 왕진 가방을 메고 ‘맹장 떼여~’하고 다녀야 밥 먹고 살 수 있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다.

 

필자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살던 곳은 조그만 시골의 군청소재지였지만 그 동네에도 약국이 다섯 개, 병원도 세 개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영어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하셨다 하여 문병을 갔는데 병명이 맹장이라 하였다. 지금이야 맹장염이라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진단도 못 해보고 복막염으로 악화하여 죽기도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진단을 받고도 수술비가 없어서 앓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많았다. 필자의 친한 친구의 어머니는 만성신부전증을 앓았는데 혈액 투석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막대한 치료비 탓에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어, 퉁퉁 부은 모습으로 앉아있던 친구 어머니의 모습은 아직도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은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1977년 공무원·교직원 건강보험으로 시작한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2000년도에 발효된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실질적인 전 국민건강보험으로 자리매김했다.

 

처음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될 당시 여러 가지 미비한 여건 속에서 시행하려다 보니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지 않으면 제도가 정착될 수 없었기에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료를 매우 낮게 책정하였다. 그 결과 보험료 부담은 적지만 보험에서 책임지는 보장은 전체 치료비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보장해 주는 치료비 또한 낮게 책정하여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는 ‘저부담·저보장·저수가’라는 ‘3저 보험’으로 시작했다.

 

국가 의료보험제도가 생기면서 저수가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의사들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의사들 입장에서 의료보험제도 탓에 마냥 손해만 입었다고 하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이용하던 의료서비스를 의료보험제도가 정착된 이후 전 국민이 누릴 수 있게 됐으니 의료 수요가 폭증했다. 의사 전체로 보면 직업적 안정성이 높아졌고 의료업은 급성장했다. 거기에 더해 최근 사회가 고령화하면서 의사면허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건강보험의 저수가로 인한 여러 가지 의료현장의 왜곡현상과 문제점은 있지만, 이는 다음 회부터 논하려고 한다.

 

정영호 한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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