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연탄 가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연탄’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월동준비로 김장과 함께 연탄을 들여 놓으면 뿌듯했던 일,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 연탄불을 갈아야 했던 일, 연탄 구멍을 맞추려다 가스를 마셔 캑캑대던 일, 연탄불을 꺼뜨려 덜덜 떨며 번개탄 피우던 일, 연탄불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던 일 등 저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의 시 ‘연탄 한 장’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민의 애환이 서린 연탄 한 장에도 삶의 교훈이 담겨 있다. 남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우는 연탄처럼 우리 몸도 남을 위해 불사를 열정이 있다면 이 사회가 춥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탄은 아련한 추억이고 낭만이다. 이젠 뒷전으로 밀려난 연탄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아직도 절박한 현실이다. 연탄이 없어 올겨울 추위가 걱정이고, 오늘도 차디찬 방에서 떨고 있다.

 

현재 연탄 한 장의 소비자 가격은 573원이다. 지난달 초 500원에서 14.6%나 인상했다. 운송비를 포함하면 장당 600원은 된다. 전국에서 15만 가구가 연탄을 난방 연료로 사용한다. 주로 쪽방, 홀몸노인, 노숙인 등 저소득층이다. 연탄값을 꼭 올려야 했는지 의문이다.

 

연탄값 상승도 부담이지만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에 따른 기부 한파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블랙홀이 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줄어 연탄 후원이 급감했다. 특히 전체 연탄 후원의 70% 정도를 차지했던 공공기관과 기업 참여가 줄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부터 개인·기업·공공기관 등의 후원을 받아 저소득층에 연탄을 무료로 나눠줘 온 비영리법인 ‘연탄은행’ 관계자들의 표정이 요즘 많이 어둡다. 연탄 후원이 크게 줄어 빈곤층 한 가구당 한 달에 150장의 연탄을 보내야 하는데 올해는 120장으로 줄여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시행 초기라 기준이 애매해 혼란을 빚거나 직무관련성ㆍ대가성 같은 요인들이 엉뚱하게 해석돼 연탄 후원이 급감한다면 빨리 명쾌한 유권해석을 내려 빈곤층이 피해를 입지 않게 해야 한다. 또 국민 관심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집회에만 쏠리고 있는데 추위에 떠는 어려운 이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박 대통령 때문에 춥고 배고픈 사람들만 더 힘들게 됐다”는 어느 쪽방촌 할머니 말씀이 가슴 아프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