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재독 작곡가 박영희 “한국음악 세계 알리고… 작곡가 꿈꾸는 청춘에 기회 주고파”

내 이름 건 작곡상 제정 놀랍고 감사… 그만큼 책임감 막중
첫번째 대상작 ‘기우’ 우리 고유의 장단 활용한 완벽한 곡

▲ 박영희
박영희 작곡가(71)는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유명한 한국인이다. 

‘제2의 윤이상’으로 알려진 그는 유럽에서 이미 최고의 작곡가로 정평이 나있다. 1978년 여성 작곡가 최초로 스위스 보스빌 세계 작곡제에서 우승했으며,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후 독일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 초연을 계기로 수차례 초청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1994년부터2010년까지는 브레멘 음악대학교 예술대 작곡과 주임교수와 부총장을 지냈으며, 현재 세계 각지의 주요 현대음악제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의 작곡 세계를 본받고, 젊은 작곡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주독 한국문화원과 ㈔한국작곡가협회가 ‘국제 박영희작곡상’을 제정했다. 

그리고 경기도립국악단이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필하모니에서 그 첫 번째 대상곡을 연주하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다음은 박영희 작곡가와의 일문일답.

-박영희 작곡상 제정에 대한 소감은.

첫 번째 소감은 책임감이다. 이름을 건 만큼 상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여성작곡가의 이름을 딴 작곡 콩쿠르가 거의 없었다. 이런 기적을 만들어 주신 부분에 대해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다.

-직접 심사에 참여했다. 대상은 어떤 곡인가.

30대 후반의 한국 여성 작곡가의 곡이다. 나를 비롯해 심사에 참여한 이건용 전 한국종합예술학교 총장과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모두 같은 이유에서 대상 수상자를 결정했다. 대상작 <기우>는 비가 오기 전 하늘의 모습을 표현한 곡으로, 우리 고유의 장단을 아주 잘 활용했다. 작곡법상으로도 완벽하고,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충분히 내게 했다.

 

대부분의 여성 작곡가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후 출산을 하면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까지 작곡의 끊을 놓지 않고 이렇게 좋은 곡을 써줬다는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 어떤 곡을 쓸 것인지,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작곡가다.

-한국 악기를 하나이상 넣으라고 고집했다. 이유가 있나.

상의 목적은 우리나라 전통악기와 그 음악성을 알리는데 있다. 국악기만을 사용해도 되고,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함께 사용해도 된다. 다만 서양악기만을 사용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콩쿠르의 특성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의 악기들은 전 세계에 평가를 받으면서 새로운 곡이 쓰이고 연주되는데, 아직 우리나라 악기들은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의 전통악기가 얼마나 풍부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전통음악의 정신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박영희 작곡상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것 같다.

우리는 음악을 하려면 영어는 기본이고, 이태리어와 불어 등 4가지 이상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외국인들도 우리 음악을 통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곡의 제목을 한국어로 표기하는 이유다.

박영희 작곡상을 통해 한국과 한국의 음악을 알리고, 작곡가를 꿈꾸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작곡계는 소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평생 작곡을 하고 좋은 곡을 써도 그 틈바구니를 파고들기 어렵다. 그 문을 열어 작곡을 하고 싶은 누구나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게 하고 싶다.

-70년의 인생과 50년의 작곡생활, 마음속에 놓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것 같다.

나를 자꾸 낮춰서 털어버리는 것이다. 기독교, 불교, 철학 할 것 없이 욕심을 버리라고 말한다. 곡도 마찬가지다. 숨을 크게 쉬는 것도 작게 쉬는 것도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

 

나를 작게 만들면 큰마음이 된다. 내 마음이 커지면 내가 풍부해지고 행복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끝없이 싸워야 한다. 나도 그런 것을 다 겪었다. 결과적으로 행복하려고 사는 것 아닌가. 자기 자신을 낮추면 행복해 질 수 있다.

 

박영희 작곡가는…

충북 청주 출신, 서울대 작곡과 졸업. 1978년 창작곡 <만남>으로 여성 작곡가 최초 스위스 보스빌 작곡 콩쿠르 우승, 1979년 유네스코 작곡 콩쿠르 1등, 한국의 난파음악상 등 수상 경력 다수. 1994~2010년 브레멘 예술대 작곡과 주임교수와 부총장 역임.

독일 베를린=송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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