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지켜낸 경기도 산성을 가다] 完. 에필로그

‘한반도 심장’을 지켜낸 2천년 호국의 성지

타오르는 촛불이 광장에 가득하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시인 고은 선생은 ‘살아서 위대한 밤을 맞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합심이 돼 잘못된 정치와 제도의 악습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털어내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원대한 뜻을 이야기하는 우리 민족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 위대함이 광장에서 촛불로 드러난 것이다. 이 촛불은 120여년 전 갑오농민전쟁에서의 죽창이 촛불로 바뀌고 그 이전의 행주산성에서 왜군과 항쟁하던 여인들의 행주치마에 담긴 돌맹이들이 촛불로 바뀐 것이고, 그 이전 몽고 군대와 항전하던 처인성의 백성들 손에 들렸던 낫이 촛불로 변한 것이고, 더 이전의 당나라 군대와 맞섰던 연천의 매초성에서 들었던 백성들의 화살이 촛불로 바뀐 것이다. 그 높고 깊은 산성에서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친 민초들의 땀과 피가 오늘 광장에서, 아니 나라 곳곳의 광장에서 촛불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산성에서 횃불을 들었던 민초들의 중심 터전인 경기도는 한반도 역사의 중심임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경기도와 함께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이 단지 21세기 오늘만의 일이던가. 그렇지 않다. 경기가 경기인 것은 바로 경기(京畿)가 우리 역사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는 수많은 외세의 무력을 온 몸으로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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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한산성의 봉암성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국가 체제가 만들어지고 무려 1천여 회의 외침을 겪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 많은 외침을 슬기롭게 극복했다고 말이다. 맞다. 우리는 수많은 외침을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그런데 그 슬기란 무엇인가. 그 슬기의 주체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수나라의 침입을 을지문덕 장군이 막아 주었고, 당나라의 침입을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 장군이 막아 주었고, 거란군의 침입은 강감찬 장군이 막아 주었고, 몽고의 침입은 김윤후 장군이 막아주었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입은 권율과 이순신 장군이 막아 주었다고 이야기한다. 아니 그 지식이 우리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 지도자의 능력은 탁월했고, 이러한 지도자로 인하여 외세의 침입을 막아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그렇지만 외세에 대한 항전이 어찌 지도자 한두 사람의 힘으로만 가능하겠는가. 그들 한두 사람의 지혜와 힘이 어찌 100만 대군의 적들을 상대하여 그들을 괴멸시킬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오고 현해탄을 건너오는 저 적들의 창과 칼을 막은 힘은 과연 어디에 있었겠는가? 그것은 바로 백성의 힘, 백성들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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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 별망성지

우리는 예로부터 작은 마을의 공동체 문화가 발달되었다. 한해 동안 동고동락 하면서 농사를 짓고, 추수를 마친 이후 마을과 마을이 서로 연대하여 축제를 했다. 이것이 부여의 ‘영고(迎鼓)’이고 고구려의 ‘동맹(東盟)’이었다. 이 축제를 통해 마을을 지키는 힘은 더욱 커지고 고려로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민초들은 마을 공동체를 위한 동계(洞契)를 결정했다. 촌계(村契)라고도 불리는 이 계모임은 기쁜 날을 위하여 쌀을 비축하고, 슬픈 날을 위하여도 쌀을 비축했다. 그리고 외세의 침입을 대비하여 마을 단위로 스스로 무예를 수련하고 무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들은 중앙정부의 군사정책과 연대하여 자기 지역을 지킬 수 있는 산성을 쌓았다. 산 위에 성을 쌓는 일이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힘든 일을 힘들어 하지 않고 쌓았다. 자기 가족들을 지키고 자기가 사는 마을을 지키고 마침내는 자신들이 사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기에 산성을 쌓는 일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해야 할 당위(當爲)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성은 만들어졌고 그 산성을 지키는 것을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다시 그 아들에게 잇게 했다. 이것이 바로 산성의 역사이고 그 산성이 바로 우리 역사를 지켜 온 것이다.

 

이러한 산성이 가장 발달된 곳이 바로 경기도였다. 경기도의 산은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에 있는 ‘임진북예성남정맥’, 백두대간의 분수령에서 시작해 포천ㆍ양주ㆍ고양ㆍ교하에 이르는 한강 북쪽의 산줄기인 ‘한북정맥’, 속리산으로부터 죽산으로 이어지는 한강 남쪽과 금강 북쪽 사이의 ‘한남금북정맥’, 죽산에서 북서쪽으로 돌아 안성ㆍ용인ㆍ안산ㆍ김포에 이르는 ‘한남정맥’, 죽산에서 안성·공주 등 충청도 서해안으로 뻗는 ‘금북정맥’이 바로 그것이다. 이 5개의 정맥에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이어지고 안성의 칠장산과 수원의 광교산, 안양의 청계산과 군포의 수리산이 이어진다. 더불어 경기 북부의 명성산, 축령산, 용문산 등 경기지역 명산과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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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소성 전투가 일어났던 대전리 산성.

이 산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고 전설과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마다 독특한 역사가 이어지며 그곳에서 문화가 형성되었다. 경기남부지역의 칠장산의 역사와 북한산의 역사가 다르고 더불어 동두천 소요산의 역사가 다른 것이다. 이는 자연 지리의 형세에 따라 산의 쓰임이 다른 것이 그 원인이기도 하였다. 한강 남쪽의 주산인 남한산과 김포 앞바다의 높은 산인 문수산은 한반도 역사 이래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했고 한강 북쪽의 용문산과 운길산은 수행의 산으로 역할을 맡아왔다. 이는 산의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그 산을 중심으로 역사의 전개가 달랐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지역의 여러 명산들은 각기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에서 나타나는 문화와 인물의 탄생 역시 다른 것이다. 그렇듯 산성의 형태도 다르고, 산성의 역사도 다르다. 그러나 경기지역의 모든 산성이 동일한 것은 돌 하나하나를 지고 오르는 그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 백성들의 땀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1년 동안 경기지역의 중요한 산성을 찾아다닌 것은 바로 산성을 쌓고 그 산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백성들의 땀과 피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곳에 담겨 있는 역사의 진실을 현재를 살아가는 21세기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소박하지만 위대한 역사속의 경기지역 백성들의 삶과 그것을 계승한 오늘의 경기지역 시민들의 현재사(現在史)로 공감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산성의 역사는 곧 항쟁의 역사이자 공동체의 역사고 더불어 미래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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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족산성에서 바라본 강화들판. 산 너머로 강화대교가 보인다.

경기지역 산성의 역사는 참으로 거대하다. 단지 한국 역사에서만의 거대함이 아니다. 이는 세계 전쟁사에 있어서 참으로 놀라운 역사이다. 전 세계 역사의 최고의 제국(帝國)들과 일전(一戰)을 벌여 그들을 거꾸러뜨리고 우리 민족의 영토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이다. 600년대 당나라는 세계 제국의 으뜸이었고, 13세기 몽고는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도 그들과 대적할 수 없었고 16세기 일본은 명나라를 정복하겠다는 꿈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나라의 군대가 우리 경기의 산성에서 백성들과 관군들을 합심으로 그들의 역사에서 감히 기록된 적이 없는 참혹한 패배를 당하고 떠나고 말았다. 우리는 이와 같은 역사의 진실을 신문의 지면으로 정리해 자화자찬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엄정한 역사기록으로 정리돼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경기인(京畿人)’으로 살아가는 의무이기도 한다.

 

현재 경기도는 백여 곳의 산성이 존재한다. 화성시의 ‘길성리토성’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고, 시흥의 ‘군자산성’은 지표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한편으로 복원이 원형과 다르게 진행된 산성들도 있다. 그럼에도 산성은 다른 문화유산보다 더 깊은 애정으로 우리가 조사 연구하고 원형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마도 10여년 안에 상당수의 산성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로 다시 부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산성은 201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경기지역 산성의 우수성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렸고 오산의 독산성은 발굴 이후 관아건물과 성안의 마을 일부를 복원하여 우리나라의 모든 이들에게 산성 문화를 체험하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100여 년 전까지 외세와의 항쟁으로 수많은 백성들의 피와 죽음이 있던 곳이 이제 100년이 지나 2000년의 산성의 역사가 만들어낸 스토리와 더불어 매우 의미있는 문화콘텐츠로 각광받을 것이다.

이 기획의 대표 필자로서 40여 회에 걸친 연재를 위해 애써주신 필자들과 멋진 편집을 해주신 경기일보 관계자 그리고 이러한 의미있는 기획을 해주시고 예산을 지원한 경기도 공직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글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산성의 역사를 이해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경기지역 산성의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제 산성이 다시 건립되고 산성에 깃발이 휘날리면 땀을 흘리며 산성에 오르는 이들이 다시 생기고 그 산성에 담겨있는 호연지기(浩然之氣)와 호국(護國)의 정신이 다시 우리 경기지역 곳곳에 퍼져나갈 것이다. 그 힘이 경기도의 힘이다.

 

김산 홍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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