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를 빛낸 역사 인물] 조광조(1482~1519)

유신 정치를 꿈꾼 조선시대 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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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 평택 이충동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510년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했다. 중종반정 이후 시대적인 추세는 정치적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흐름이었다. 전적ㆍ감찰ㆍ예조좌랑을 역임,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야 한다는 지치주의에 입각, 왕도정치의 실현을 역설했다.

 

그의 도학정치는 조선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바꿨다. 미신타파를 내세워 소격서의 폐지를 강력히 주청, 신진사류들과 함께 훈구세력의 타도와 구제의 개혁 및 그에 따른 새로운 질서의 수립에 나섰다.

 

급진적인 개혁으로 홍경주ㆍ남곤ㆍ심정 등 훈구파는 후궁을 움직여 왕에게 신진사류를 무고하도록 했다.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써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에 왕에게 바쳐 의심을 조장했다. 결국 조광조는 투옥, 사사됐다.

이 사건을 ‘기묘사화’라고 한다. 그 뒤 신원돼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에 배향됐다.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하는 후학들은 사당과 서원을 설립했다. 평택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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