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헌재 재판·여론 재판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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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009년 혼인빙자간음죄를 위헌으로 결정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정 행위를 국가가 규제할 것인지 아니면 도덕률에 맡길 것인지는 결국 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사회구성원들의 의식 등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혼빙간죄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워졌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위헌 판단의 근거로 택했음을 분명히 했다.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을 과학화한 수치는 여론조사다. ▶헌재의 결정이 대개 이렇다. 여론과 일치하는 결론을 내린다. 동성동본금혼제(위헌), 간통죄(위헌), 사형제도(합헌), 낙태금지(합헌) 등이 모두 당시 여론에 부합한 결론이었다. 참여정부 최대 이슈였던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위헌)도 그랬다. 정부 의지와 달리 국민 여론의 다수가 수도이전에 반대했다. 최근 김영란 법(부정청탁 방지법)의 합헌 결정에도 여론은 그대로 반영됐다. 사립학교, 언론계를 공직자와 동일시한 오류가 학계에서 지적됐지만, 여론은 김영란 법에 우호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결정에도 같은 흐름이 적용됐다. 한나라당에 의해 탄핵이 결정되면서 일시에 탄핵 역풍이 불었다.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10여 곳을 제외한 모든 지역구가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갔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는 답변이 70%를 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헌재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결정문에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누가 보더라도 여론을 좇은 결정이었다. ▶대법원은 법전을 놓고 판결한다. 범죄구성 요건, 가벌성, 판례 등을 엄격하게 대입해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다 보니 의외와 반전이 속출한다. 하지만, 헌재에는 법전이 없다. 범죄구성 요건, 가벌성, 판례 등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이 모든 조건을 뛰어넘는 기준은 ‘시대 상황’이다. 그 시대를 구성하는 가치관이 기준이다. 이러다 보니 충격적 결과나 반전이 없다. 국민 다수의 생각이 그대로 옮겨진다. 이상할 건 없다. 그게 법원과 독립된 헌재의 존재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도는 대략 5~10% 선이다. 탄핵 의결 직전 조사에서 국민 80%가 탄핵에 찬성했다. 여론을 좇는 헌재의 관행을 그대로 적용하면 박 대통령에겐 절망적이다. 극적 반전의 가능성이 없다. 전혀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박 대통령 쪽으로 여론이 반전된다면 헌재 결정은 기각으로 급격히 기울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 결론. 따지고 보면 이 결론도 여론조사, 촛불 참가자 수, 언론 논조가 좌우할 판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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