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항목만 102개… 현실성 없는 방역 매뉴얼 AI 피해농가 이중고

일부 추가비용 들어 경제적 부담 가중
재발땐 보상비 감액… 패널티도 물어야
농민 “부실방역 책임까지 떠넘겨 억울”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 원인으로 농가의 부실한 방역이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정부가 농가를 상대로 요구하는 방역체계가 애초부터 준수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8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전국에 위치한 닭과 오리 등 가금류 사육 농가를 대상으로 매년 현장 방역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AI 등을 대비하는 평상시 방역체계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되는 실태조사는 정부가 마련한 ‘가금 계열사 소속 농장 방역실태 평가표’를 기준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평가표 항목이 102개에 달하면서 농민들은 애초 정부의 기준대로 방역을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콘크리트 등 진입로 포장 여부’, ‘각종 도구 보관을 위한 별도 창고 마련’ 등 일부 항목의 경우 추가 비용을 들여 시설을 마련해야 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는 농가에는 경제적으로 부담되는 실정이다. 한국오리협회의 한 관계자는 “가금류 사육 농가들이 생각보다 열악해 정부가 요구하는 102가지 항목을 다 지킬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농가에게 방역이 부실했다며 책임을 돌리는 것이 억울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여기에다 매년 진행된 평가 점수는 지자체에 통보되며 추후 해당 농가에서 AI 재발 시 책임 여부를 전가하는 요소로 작용, 농가들의 아픈 마음을 더욱 더 옥죄고 있다. 이번 AI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산란계 농가의 경우, 방역지침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다며 AI 확산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재발정도에 따라 보상비가 감액되는 등 소정의 패널티를 받기 때문이다.

 

용인에서 산란계 농가를 운영하는 A씨(58)는 “올해 유독 산란계 농가 피해가 크다 보니 연일 좁은 공간에서의 집단 사육 등 사육환경과 각종 방역체계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면서 “그러나 경제적 여건을 생각하면 정부의 매뉴얼만큼 쾌적한 환경에서 사육할 수 없는 것이 한계”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농가들의 현실적 요건을 반영하면서도 구멍 없는 방역 체계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평가항목이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AI 등 가축질병 예방을 위해서는 평상시 체계적인 방역이 최우선”이라며 “반드시 지켜야 하는 방역 매뉴얼에 농가들의 현실적 여건을 반영하도록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한진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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