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네가 대학 총장을 지냈지만 ‘총장’보다 ‘U교수’라 부르겠네. 그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오랫동안 자네의 꿈이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였기 때문이네.
물론 자네가 대학 총장에 선출됐을 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었지. 그런데 몇 년 전 대통령 선거 때 A후보를 지지 선언하면서 ‘학자의 삶’을 걸어온 자네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네. 그때 자네는 이렇게 말했어. “이러다간 보수가 무너질 것 같아 앉아있을 수 없었다”고.
그래, 거기까지는 좋다고 해. 다행히 A후보가 대통령이 됐고, 그 후 공기업 대표로 임명이 되면서 자네의 ‘지지선언’은 불순하게 되어버렸어.
뿐만아니라 자네의 공기업 노조가 낙하산 인사라며 파업을 하는 바람에 취임식도 못하다가 가까스로 수습되는가 했더니 결국 중도하차하는 모양을 보였으니 친구로서 안타깝지 않은가. 그 무렵 자네 대학과 가까운 곳의 어느 총장은 신당 발기인에 참여하는가 하면, 또 다른 대학 총장은 정계 실력자의 아들을 불러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등 경쟁적으로 꼴불견한 모습을 보였지.
왜 대학 총장들이 이렇게 들떠있었는지 이해를 못하겠더군. ‘권력’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빨대처럼 흡인력을 갖는 것인가. 자네도 그곳 뉴질랜드에서 요즘 뉴스를 통해 들었겠지만 아직도, 아니 갈수록 대한민국은 정치권력의 마력이 대학을 어지럽히고 있네.
‘최순실 게이트’의 한 축을 이루는 안종범교수(전 청와대 정책수석), 김상률교수(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종덕교수(전 문체부 장관), 김종교수(전 문체부 차관) 등등의 면모가 그렇지 않은가.
이들 중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교수도 있고 학교로 돌아간 교수도 있는데 학교로 돌아간 교수들은 학생들이 복직 반대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계속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군.
나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특히 ‘교수님’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과제물까지 손을 봐줬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분노를 넘어 슬픔을 느꼈네. 어떻게 교수의 품격이 있는데 그럴 수가 있는가.
U교수, 자네도 평교수로 있을 때 TV에 얼굴 내밀며 다니는 교수들을 평가절하 했었지. 저렇게 얼굴 알리며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는 학자가 아니라고. 그런데 ‘욕하면서 배운다’고 결국 U교수도 그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 대선 정국이 무르익어 가면서 벌써 대학가는 이런 정치 바람이 또 다시 불고 있다네. 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의 싱크탱크가 500명의 교수, 전문가로 구성이 되고 다른 대선 주자들도 이런 싱크탱크 구성을 서두르고 있다네.
‘폴리페서’라 불리는 정치 교수들은 여기에 끼지 못하면 무능한 것으로 찍힐까봐 목을 빼고, 학교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학교 교수가 줄 잘 서서 한 자리 하게 되면 학교 발전에 큰 몫을 하게 되니 은근히 바라기도 한다네. 그러니 이런 대학 풍토에서 어떻게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겠는가?
U교수. 4ㆍ19 당시 이승만대통령을 하야로 몰고 가고 혁명으로 이끄는데 결정적 전기가 된 것이 4월 25일 교수들의 시위였음을 잘 알겠지? 백발의 노교수들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거리를 행진하자 사태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지. 그래도 그들 교수들이 장관이나 국회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못 들었네. 이것이 지성과 학자의 행동이 아니겠나?
아수라장이 돼가는 우리 대학을 보며 정치판에 상처를 입고 조국을 떠난 U교수가 생각이 나서 몇자 적었네. 건강하게.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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