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보물찾기

-미국 아이파크 재단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
지난 가을 나는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의 한 숲 속에서 삼 주를 지냈다. 오래된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자라는 넓은 숲 속은 다람쥐와 흰 꼬리 사슴들이 뛰고 새들이 한가로이 호수 위를 비행하는 곳이었다. 나무들 사이로 지평선이 보이고 태양은 낮은 언덕을 넘을 때까지 긴 그림자를 남기는 그곳에서의 일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매월 6인 정도의 미술작가, 문학가, 음악가들을 선정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아이파크재단(I-Park Foundation)은 운영자 랄프씨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하여 2001년 커네티컷주 이스트 해담에 설립한 레지던시 공간이다.

 

자연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요소와 현상에 대한 생생한 반응을 담아내는 작업을 격려하는 이 단체의 프로그램 운영 방침은 나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연 700여 명이 지원한다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2016년 초대작가로 선정되었다.

 

3주 연속 한 장소에서 지내며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였다. 특히 단풍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나뭇잎이라는 단일 주제를 다룸으로써 다양한 방법으로 낙엽과 만나는 시도를 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숙소에서 10여 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업실을 오가는 길 위에서 작업했다.

 

매일 땅만 쳐다보며 작업하는 나를 보고 이곳에서 일하는 한 분이 ‘보물찾기’를 하냐고 물었다. 맞다! 나와 눈을 맞춘 하나의 낙엽(a leaf)이 시각적 개념적 관계 맺음의 방식을 통해 특별한 잎새(the leaf)가 되는 순간 그것은 보물이 된다.

하나의 낙엽과 나의 만남을 기념하는 일종의 증표는 그곳 그 시간에 즉흥적인 영감에 의해 간결하게 이루어지고 곧 사라지지만 사진으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기억된다. 나는 이곳에서 100여 장의 사진 작업과 이를 바탕으로 작업한 같은 분량의 드로잉을 남겼다.

 

3주의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렀다. 그동안 좋았던 날씨와는 달리 막상 손님들을 맞이하는 날인 오픈 스튜디오 당일은 춥고, 바람 불고, 눈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사는 작가들, 애호가 그리고 공간 후원자들이 많이 찾아 작가들과 진지한 만남을 가졌다.

 

나는 낙엽 한 장과의 만남을 통해 ‘빛을 느끼고’, ‘그 색과 모양을 보며’, ‘그것이 거기에 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하나의 나뭇잎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미 있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사진작업을 편집한 5분간의 영상 자료가 상영되고 불이 켜지는 순간 박수를 보내는 그들의 표정을 통해 내가 깊은 공감의 공간 속에 있음을 느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이파크에서 함께 작업했던 작가들, 전나무 숲에서 영감을 얻어 시를 쓴 한국계 미국인 유지니아 김, 실리콘 캐스팅으로 입체 회화를 실험하는 쇼니, 동물 가면을 만들어 퍼포먼스 하는 제라, 무덤덤한 기계적 장치가 인상적인 비디오 작가 앤드류, 여행 가방에 집 구조를 만들어 호수에 띄운 로버트 그리고 나뭇잎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어 작업했던 앨리스의 작업을 떠올리면서 나의 작업을 돌아보았다.

 

잠시 일상을 떠나 몰입했던 이국의 풍광(자연) 속에서 나는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의 정취에 취하기보다는 내 발에 차이고 밟히는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낙엽에 주목하는 동안 작고 소소한 것들에 반응하는 몸 감각이 나의 상상력과 더불어 일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먼저 나서려는 획일적인 지적 반응을 차단하고 변화무쌍한 가운데 일관된 순환의 묘를 살려내는 자연의 흐름에 동조하는 나의 보물찾기가 계속되기를 바래본다.

 

전원길 서양화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