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94년 전 계란 수입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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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조절의 한 가지 방법으로 경성부에서는 계란 값을 내리게 하도록 하려는 바, 원래 계란은 그다지 일반에게 넓게 쓰이는 것은 아니나 식료품 중에 자양이 제일 풍부한 것으로 대체로 보아 일반에게 없지 못할 식료품인데…중국 등으로부터 수입되는 것도 실로 적지 아니한 터라… 수입세를 면제하는 것이 적당한 방법일 터인데… 일본서도 계란에 대하여는 재작년부터 수입세를 면제하였는 바 일본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수입하는 것도 다소간 리익이 되리라.’ ▶1923년 1월 18일 동아일보 기사다. 제목은 ‘계란 수입세ㆍ값을 내리기 위하여’다. 당시 적지 않은 양의 계란이 수입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주요 공급처로 중국 청도(靑島)를 지명하고 있다. 기사의 시작은 ‘물가 안정’이지만 결론은 달라진다. 일본이 수입세를 면제해 싸니 일본에서 재(再) 수입하라는 권고가 담겨 있다. 그 통상 업무도 ‘총독부가 교섭한다’고 적고 있다. 일제가 조선을 ‘계란 소비처’로까지 삼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계란 수입세가 또 등장했다. 정부가 신선란 3만5천톤, 계란액, 계란가루 등 9개 품목 총 9만8천톤에 대한 수입을 허용했다. 관세율(기존 27%)을 0%로 낮추는 긴급할당관세를 적용키로 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 이후 가격이 급등한 계란 값 안정을 위해서다. 이로써 신선란 3만5천톤(약 7억개)이 긴급할당관세의 적용을 받아 관세 없이 수입되게 됐다. 해방 이후 신선란 수입은 처음이다. ▶AI 발생 50일이다. 살처분된 가금류가 3천만 마리를 넘었다. 닭이 2천582만 마리로 가장 많다. 이중 계란을 낳는 산란계가 2천245만 마리다. 산란계 전체의 32.1%다. 계란 값이 이미 한 판(30개)에 1만원을 넘었다. ‘소고기보다 비싼 계란’이 됐다. 이나마 1인 1판으로 판매가 제한됐다. 조만간 해결될 가능성도 없다. 병아리가 산란 닭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적어도 6개월 이상 지금의 계란 파동이 이어질 전망이다. 사상 초유의 신선란 수입이 결정된 배경이다. ▶이번 계란 수입과 94년 전 계란 수입에는 차이가 있다. 그때의 명분은 물가 조절이었는데, 지금의 명분은 질병 대책이다. 그때의 결정 기관은 일본 총독부였는데, 지금의 결정기관은 대한민국 국무회의다. 그때의 속 뜻은 식민지 수탈이었는데, 지금의 속 뜻은 국민 생활 안정이다. 다만, 한 가지 사실만은 94년 전과 닮았다. 그때도 축산 농가는 무너졌고, 지금도 축산 농가는 무너졌다. 무너진 축산 농가에는 1923년 일제 침략이나 2017년 AI 침략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가히 역대급 참상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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