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개, 돼지, 소

류설아 문화부 차장 rsa11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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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어김없이 계획을 세웠다. 무려 7가지나 된다. 다이어트는 기본이다. 가족 여행도 있다. 또 하나가 한 달에 책 3권 읽기다.

 

야심 차게 처음 선택한 책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모멘토 刊)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멜라니 조이가 2011년 국내 발간한 베스트셀러다.

흥미로운 책 제목에 집어들었는데, 내용은 상당히 불편했다.

 

저자는 사람들이 같은 동물임에도 소나 돼지, 닭 등 ‘먹을 수 있는 동물’을 먹을 때 살아있는 그것들을 떠올리지 않고 섭취하는 사람들의 신념체계를 ‘육식주의(carnism)’로 명명한다. 이를 설명하면서 소와 돼지 등의 도축 현장을 적나라하게 전달하는데, 도통 한 문장을 읽어내려가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육식주의를 버리고 ‘채식주의를 시작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다. 그럼에도 책을 덮고 뒤돌아선, 먹을 수 있는 동물을 먹었다. 아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에 대해 저자는 설명한다. 많은 이들이 동물을 아끼면서도 먹는 것은 분명히 가치 기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지점이다. 이 같은 불일치는 도덕적 불편함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 불편을 완화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는 행동에 맞게 가치 기준을 바꾸는 것, 가치 기준에 맞게 행동을 바꾸는 것, 행동에 대한 ‘인식’을 바꿈으로써 그것이 가치 기준에 ‘맞는 듯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 있다.

 

저자는 서로 다른 종류의 고기에 대해 상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동물 간 실질적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각 동물을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동물을 먹을 수 있는지 결정하고 그것을 먹을 때 정서적 또는 심리적으로 불편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인식을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불현듯 그렇게 스스로 인식을 왜곡하면서까지 외면한 것이, ‘육식주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하지만 ‘원래 그런 것’이라며, 원칙에 어긋나지만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정당화한 것은 없었나.

 

상당한 불편함을 안긴 새해 첫 책은 나에게 또 하나의 목표를 세우게 했다. 주류, 이데올로기, 규범 등 상식과 보통이었던 것을 재인식해보기다. 만만치 않은 한 해가 될 듯하다.

류설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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