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 한다고 그 사진을 보면 사실 그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시사에 눈 밝은 이라면 더더욱 말예요. 그들은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자, 해외 유명 철학자를 비롯해 신부, 시인, 소설가, 독립운동가, 사회운동가, 학생, 노동가, 역사학자, 골목 상인 등 시대의 초상이라 할 수 있죠.
그러니까 그 얼굴들은 한 마디로 1970년대의 표상인 셈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 초상들 앞에서 그가 누군지를 알아채는 재미가 아니라, 그가 그 시대에 어떤 행동을 했고 무엇을 주장했으며, 또 어떤 사상의 편린을 펼쳐냈는지 의문할 뿐이죠.
만약 우리가 그 인물 하나하나의 의문들을 풀어서 이해할 수 있다면 아마도 1970년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를 그릴 수 있을 거예요. 다시 말해 그 초상들은 시대를 해석하는 키워드이면서 그 자체로 이미지 역사의 주요한 상징물인 거죠. 그런데 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특정인과 관련없음’이라고 했을까요?
총 11장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역설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본래 얼굴 사진에 검은색 띠를 붙이는데요, 그것은 그가 곧 범죄자라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말예요. 신문에 실린 그런 사진은 신문 편집자가 판단해서 그렇게 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성능경 작가는 과연 신문 편집자가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묻는 것에요.
당시에는 실제 사건과 기사 사이에 다소 괴리가 있었다고 해요. 편집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좋고 나쁨을 구별했지만 작가는 그가 선택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노란색 띠를 붙임으로써 좋고 나쁨의 기준을 무너뜨리고 있죠. 작가는 편집 권력자가 행사한 편집 권력을 재편집한 셈이에요.
성능경 작가는 1970년대의 대표적인 전위미술가예요. 1974년 제3회
이제는 ‘특정인과 관련있음’이라고 해야 할 사건들이 많고 또 초상권, 인격권이 커지면서 초상 사진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어요. 예술가의 뒤집기를 초상의 주체들이 펼치는 최근의 상황들을 보면서 ‘특정인’들이 스스로를 권력화 한 게 너무나 아이러니하기도 하고요.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문화재생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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